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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고 I 배달 라이더 월 수입 1,300만 원? ‘신화’가 아니라 단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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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노동문제연구소 해방(解放) 연구실장 조회 3,291회 2022-02-0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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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배달 라이더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인증한 배달료 수입
 

실화인가, 신화인가?

 

<“강남에서 배달하면 월 1,300만 원”, 의사만큼 버는 라이더들>, 지난 122일 한 언론사가 내보낸 기사의 제목이다. 어느 배달 라이더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배달료 수입을 인증하면서 화제가 되자 이를 기사로 옮긴 것이다. 가능한 얘기일까?

 

배달료가 치솟는 최적의 조건(강남, 눈비 올 때)일 때 휴대전화 두세 개를 사용해 배민, 쿠팡, 요기요 앱에 뜨는 배달을 모두 쳐내겠다는 각오로 임하면 가능하긴 하다. 물론 화장실 갈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분 섭취도 줄이고, 수십 년 경력의 길눈으로 내비게이션보다 빠른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눈비 오는 도로와 폴리우레탄 지하 주차장에서의 위험천만한 상황은 올림픽 체조 국가대표 선수급의 운동신경으로 모조리 모면하고, 험한 추위나 폭염으로 머리가 지끈지끈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아도 극한의 인내심으로 버텨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사고 한번 내지 않고 하루에 백 건 가까이 배달을 해내는 전국 0.01% 등급의 배달 라이더라면 달성 가능하다.

 

이러니 신화라 얘기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일말의 진실은 있다. 최근 한국의 배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위의 조건 중 7~80%를 만족하는, 이를테면 전국 1% 등급의 배달 라이더가 월 수입’ 700~800만 원을 찍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월 수입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총 매출액이라고 하는 게 옳다.

 

배달료로 라이더가 받는 금액 전부를 합한 것이 월 수입인데, 여기서 기본적으로 다음의 비용들을 빼야만 실제 생계비로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된다. 하루 수십 건 배달에 소요되는 기름값, 일하면서 삼각김밥, 핫바라도 먹어야 하니 식대, 오토바이 수리 및 유지비용, 연간 수백만 원에 달하는 유상운송보험료 등이 그것이다.

 

올해 11일부터 배달 플랫폼 라이더에게도 고용보험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럼 보험료 산정은 어떻게 할까? 근로복지공단은 실태조사에 입각해 월 수입30%를 위에 적시된 고정비용으로 빼도록 했다. 월 수입70%에 해당하는 금액에 고용보험료율을 적용해 보험료를 징수한다. 정부도 라이더들이 받는 전체 배달료의 30%는 비용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위 1% 월 수입 800만 원을 버는 라이더라고 해봤자 30% 고정비용 240만 원을 제한 560만 원을 실제 가처분 소득으로 벌어가는 셈이다.

 

이나마도 안전을 담보로 잡혀야 벌 수 있는 돈이다. 하루에 10건 배달할 때와 100건 배달할 때, 언제 사고가 더 많이 날까? 상식이다. 100건 쳐낼 때 사고가 훨씬 많이 난다. 사고 총량의 법칙이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게 되면 병원비, 오토바이 수리비, 혹여 상대를 다치게 했다면 물어줘야 할 비용들이 발생한다. 게다가 다쳐서 치료받는 기간 동안 일을 못하니 수입도 줄어든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해 보자. 경력 10년 전후의 전업 라이더들의 경우 대략 월 수입 400만 원을 가져가는데 차 떼고 포 떼면 실제 소득은 월 200만 원 남짓이다. 그런데 이게 다일까? 고용보험료 떼가기 위해 실소득을 파악하기 시작한 국세청과 건강보험공단은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또 월 수십만 원씩 떼어가기 시작했다. 라이더들은 퇴직금도 없고 국민연금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노후 보장 대책은 전혀 없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성장 중인 한국의 플랫폼 배달 노동시장, 그러나 그 끝은 무엇일까?

 

수많은 이들이 배달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음에도 일감은 넘쳐나고 배달 라이더 구인난이 생기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많은 배달 플랫폼이 고액의 프로모션(순간적인 배달료 인상)을 내걸고 라이더 유치경쟁에 나서고 있다. 다양한 노동자들이 라이더 노동시장으로 진출 중이다. 택시가 돈이 안 되니 라이더로, 타다 서비스 종료로 해고된 뒤 라이더로, 음식점 알바 하느니 라이더로, 음식점 사장 하다 보니 라이더가 더 버는 것 같아서 등등. 라이더 공급은 부족하고 수요가 많은 상황에선 라이더들의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아질 수 있다. 조직력과 투쟁력, 교섭력만 있다면 임금(배달료) 인상도 노려볼 수 있는 조건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이 쿠팡 물류센터에서 벌어지고 있다. 택배 물량은 넘쳐나는데 인력이 없다. 이제 일용직이 아니라 몇 개월 이상 일하는 계약직이 필요하다. 그래서 (비록 3개월 내지 6개월 근속을 채워야 지급되는 돈이지만) 입사 지원금 3~400만 원을 걸고 사람을 모집할 정도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까? 월 수입 1,300만 원 어쩌구 하면서 군불을 때고 있는 이유는 조만간 라이더 임금과 배달료 후려치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신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점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치열한 출혈 경쟁을 벌이지만 독점에 성공해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게 되면 냉혹한 이윤 회수에 나서는 것, 이것이 플랫폼 자본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유럽이 지금 그렇다

 

코로나 팬데믹이 처음 왔을 때의 유럽 상황이 지금의 한국과 유사했다. 배달 수요는 폭증하는데 라이더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배달료가 꽤 높이 올랐고 많은 이들이 직장까지 때려치우며 라이더로 이직했다. “매일 출근하며 사장과 관리자 눈치 보는 것보다 내가 원할 때 일할 수 있는 유연한(flexible) 근무가 맘에 들었다.” 당시 라이더로 이직한 노동자들 백이면 백 모두 이렇게 얘기했다.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런데 작년 연말 영국 배달 플랫폼 저스트이트(JustEat)와 계약을 체결해 라이더 모집과 배달 대행을 하는 스튜어트(Stuart)800미터 미만의 기본 배달료를 4.5프랑에서 3.41프랑으로 무려 25% 삭감했다. 드디어 배달료 후려치기에 나서며 투자금 회수를 시작한 것이다. 이에 곧바로 라이더들이 파업에 들어가 크리스마스까지 약 20여 일 파업을 진행했다. 크리스마스 때 파업을 중단한 후 올해 110일부터 재파업에 나서 현재까지 50일 가까운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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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간 보험료로 2천 프랑, 기름값은 주당 140프랑 지불하고 있다. 예전에 나는 주 4~5일 근무로 생계비 충당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 7일을 일해야 한다. 하루 배달 시간도 평균 12~13시간에 달한다.” 영국 라이더 파업을 이끌고 있는 31세의 카일 랑게(Khalil Lange) 씨의 말이다. “나는 유연한 근무가 좋아서 다른 (정규직) 일자리를 때려치우고 라이더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가족들 볼 시간조차 없는 상황이다.”

 

최근 터키의 라이더들도 파업에 나섰다. 4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플랫폼 자본이 명목 배달료를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질 배달료를 삭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라이더들을 모집하고 플랫폼에 묶어두기 위한 시점까지는 배달료를 높게 유지하며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기도 하지만, 이내 배달료 후려치기로 이윤 챙기기에 나서는 플랫폼 자본의 속성이 한국이라고 다르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한국의 대리운전이 그러하다. 예전엔 부업으로도 뛰니 어쩌니 했지만 코로나19로 음식점에 직접 가서 음식 먹는 이들이 줄어 대리운전 이용자가 급감했다. 결국 부업으로 뛰던 이들은 대부분 이쪽 노동시장에서 철수했으며 현재는 사실상 전업 기사들만 남은 상황이다. 라이더와 택배기사 역시 부업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라는 선전홍보가 많이 이뤄지지만, 플랫폼 자본이 배달료/수수료 후려치기에 나서며 이윤 회수에 들어가면 모두 다 옛말이 되어버릴 것이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가 중요하다

 

플랫폼 자본의 의도가 이처럼 분명한 만큼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 긴급하게 조직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통해 최소한의 배달료를 규정하는 안전배달료,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규제할 수 있는 노사협약 등을 미리 확보해두어야 한다. 한국의 플랫폼 자본도 배달료 후려치기에 나섰을 때 이를 막아낼 수 있느냐는 전적으로 플랫폼 노동자의 단결 수준에 달려 있다. 월 수입 1,300만 원의 신화가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의 단결에 주목하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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