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 한여름의 인연, 한겨울의 연대
페이지 정보
첨부파일
관련링크
본문
편집자 주 청년 세대의 전반적 우경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다른 한편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어깨 걸고 함께하려는 젊은 동지들도 적지 않다. 아래 글은 성공회대 학생 이훈 동지가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천막농성 투쟁에 연대하며 남긴 일기 형식의 글이다. 적자생존의 ‘오징어게임’을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과 희망이 노동자투쟁 속에 깃들어있다.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청년 동지들의 활약이 더욱 커지길 기대하며, 이훈 동지의 사진과 글을 <가자! 노동해방> 온라인신문에 옮겨 싣는다.
새벽 1시, 달걀야채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밥 한 통을 전부 푸고 달걀도 10개나 썼다. 당근, 버섯, 양파, 대파, 고추를 차례로 다진다. 기숙사에 있는 큰 냄비를 3개나 사용했다. 보통은 나 혼자 먹을 정도만 만드니까 1~2인분 요리에 익숙한데, 이번엔 9인분을 한 번에 요리했더니 기진맥진했다. 설거지까지 끝내니 새벽 4시가 넘었다. 방에 올라가서 잠시 쉬다가 새벽 5시 30분쯤 가방을 싸서 기숙사에서 나왔다. 강원도 원주로 출발했다.
원주에선 4일 전(1월 18일)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과 연이 닿은 건 지난 여름이었다. 당시에 건보공단의 노동환경을 기록하고 청와대까지의 행진을 같이 했는데, 그것보단 다른 게 포인트라서 여기선 생략한다.
당시 끈질긴 투쟁의 결과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소속기관 정규직으로 전환(자회사 정규직)을 약속받게 되었다. 아쉬운 결과이자, 노동조합이 크게 양보한 결과였다. 그런데 여름에 행진했던 건보공단 노조는 한겨울에 다시 농성장을 차렸다. 왜냐하면 건보공단이 그마저도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곧 하청업체들의 계약기간이 끝난다. 그러면 이젠 소속기관으로 노동자들을 전환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신규 하청업체의 입찰을 받겠다고 한다. 은근슬쩍 약속을 깨려 하는 것이다.
다시 원주에 천막을 치던 날, 갑자기 포클레인이 나타났다. 천막을 치려던 자리에 영문도 모르게 나타난 중장비가 갑자기 땅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이 맨몸으로 포클레인을 막아섰고 겨우 천막을 칠 수 있었다.
조합원 중에 친분이 있는 형이 있는데, 형은 나한테 괜히 고생해서 자고 갈 생각 말고 그냥 집에 가라고 하고, 나는 조합원들 놔두고 혼자 가기 싫다고 하고, 형은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하고, 나는 싫다고 자고 갈 거라고 실랑이했다. 결국은 자고 가기로 했다. 내일도 자고 월요일에 가고 싶은데 내일도 실랑이할 거 같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