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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I 한여름의 인연, 한겨울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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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성공회대학교 제6대 인권위원회 위원장 조회 15,257회 2022-01-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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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청년 세대의 전반적 우경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다른 한편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어깨 걸고 함께하려는 젊은 동지들도 적지 않다. 아래 글은 성공회대 학생 이훈 동지가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천막농성 투쟁에 연대하며 남긴 일기 형식의 글이다. 적자생존의 오징어게임을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가능성과 희망이 노동자투쟁 속에 깃들어있다.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청년 동지들의 활약이 더욱 커지길 기대하며, 이훈 동지의 사진과 글을 <가자! 노동해방> 온라인신문에 옮겨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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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 달걀야채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밥 한 통을 전부 푸고 달걀도 10개나 썼다. 당근, 버섯, 양파, 대파, 고추를 차례로 다진다. 기숙사에 있는 큰 냄비를 3개나 사용했다. 보통은 나 혼자 먹을 정도만 만드니까 1~2인분 요리에 익숙한데, 이번엔 9인분을 한 번에 요리했더니 기진맥진했다. 설거지까지 끝내니 새벽 4시가 넘었다. 방에 올라가서 잠시 쉬다가 새벽 530분쯤 가방을 싸서 기숙사에서 나왔다. 강원도 원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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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선 4일 전(118)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과 연이 닿은 건 지난 여름이었다. 당시에 건보공단의 노동환경을 기록하고 청와대까지의 행진을 같이 했는데, 그것보단 다른 게 포인트라서 여기선 생략한다.

 

당시 끈질긴 투쟁의 결과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소속기관 정규직으로 전환(자회사 정규직)을 약속받게 되었다. 아쉬운 결과이자, 노동조합이 크게 양보한 결과였다. 그런데 여름에 행진했던 건보공단 노조는 한겨울에 다시 농성장을 차렸다. 왜냐하면 건보공단이 그마저도 어기고 있기 때문이다. 곧 하청업체들의 계약기간이 끝난다. 그러면 이젠 소속기관으로 노동자들을 전환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신규 하청업체의 입찰을 받겠다고 한다. 은근슬쩍 약속을 깨려 하는 것이다.

 

다시 원주에 천막을 치던 날, 갑자기 포클레인이 나타났다. 천막을 치려던 자리에 영문도 모르게 나타난 중장비가 갑자기 땅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이 맨몸으로 포클레인을 막아섰고 겨우 천막을 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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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을 친 다음 날,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들이 천막을 둘러싸며 바리케이드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내용의 큰 현수막을 달기 시작했다. 그걸로 노조의 농성 천막이 시민들한테 안 보이게 가렸다. 미리 달아두었던 노동조합의 현수막은 단 2개를 제외하곤 말도 없이 찢기거나 사라졌다. 여성 조합원 한 명이 왜 이러냐고, 이러지 말라고 다가가자 폭행을 시늉하며 주먹을 들고 거칠게 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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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듣곤 빨리 조합원들에게 연대 방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추위에 떨며 잤을 조합원들이 따뜻한 죽을 아침으로 먹을 수 있게 가져간 것이다. 조합원들은 감사하게도 맛있다며 드셨다. 그리고 천막의 상황은 상상보단 추위에 대비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예상 외의 일을 했는데, 천막에 문을 달았다. 조합원들이 천막에 문을 달고 싶어하셔서 다 같이 문을 만든 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톱질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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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중에 친분이 있는 형이 있는데, 형은 나한테 괜히 고생해서 자고 갈 생각 말고 그냥 집에 가라고 하고, 나는 조합원들 놔두고 혼자 가기 싫다고 하고, 형은 왜 사서 고생하냐고 하고, 나는 싫다고 자고 갈 거라고 실랑이했다. 결국은 자고 가기로 했다. 내일도 자고 월요일에 가고 싶은데 내일도 실랑이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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