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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빵과장미: 국제 선언문(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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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전해성 조회 15,661회 2021-12-0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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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빵과장미: 국제 선언문2017년에 11개 나라에서 5개 국어로 동시에 발표됐다. 지금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우루과이, 볼리비아, 미국, 페루, 독일, 이탈리아, 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 등 14개 나라에 빵과장미가 조직돼 있다. 이 글에 포함된 모든 규정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체제에 동화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배타적인 분리주의 페미니즘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에 도전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페미니즘을 모색하는 데에서 빵과장미의 주장과 실천은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이다. 이 선언문은 스페인어로는 201738일 세계 여성의 날 시위를 앞둔 31일에, 영어판으로는 같은 해 622레프트보이스에 게재됐다. 2회로 나눠 번역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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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판 빵과장미: 국제 선언문 

스페인어판 빵과장미: 국제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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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전국여성대회에 참가한 수천 명의 빵과장미회원들

 

 

201738일 세계 여성의 날, 국제 여성 파업 호소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거리로 나섰고 파업을 벌였다.

 

이 대규모 시위는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것은 최근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이탈리아에서 성차별 폭력과 여성 살해에 반대하고, 폴란드, 아일랜드, 한국에서 재생산권리와 낙태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에서부터 시작됐다. 프랑스와 아이슬란드에선 임금 격차에 맞서 여성들이 뭉쳤고,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에 맞서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다. 트럼프에 대항하는 여성 행진은 미국 전역의 도시에서뿐만 아니라 런던, 바르셀로나, 베를린, 암스테르담, 부다페스트, 피렌체 같은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일어났다.

 

이들 시위에서 여성은 자본주의 위기에 대해서도 저항을 표명했다.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이 위기의 대가를 임금삭감, 해고 및 긴축 조치를 통해 노동자계급이 치르고 있었다. 자본가들과 그들의 정부는 노동자와 극빈층의 생활조건을 공격하며, 이들의 다수가 여성이다.

 

38일 시위는 1917년 세계 여성의 날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섬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시작된 러시아혁명 100주년도 기념했다. 이 과정은 10월혁명에서 절정에 달했다.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그 혁명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쟁취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싸우고 있는 권리와 자유를 단 몇 달 만에 성취했다.

 

이 선언을 지지하는 여성들은 러시아혁명의 전통을 복원하며, 그 전통이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의 착취와 억압에 근거한 사회의 모든 흔적을 지워냈을 때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며, 낡은 사회의 폐허 위에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계급투쟁의 역사는 여성의 역사이기도 하다

 

전 세계 여성들의 이런 시위는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역사를 통틀어 여성은 가부장제와 지배계급이 강요한 차별과 불평등에 저항해 왔다.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유럽의 여성 농민들은 그들의 가족을 굶주림과 고통으로 몰아넣은 기근과 빵, 밀가루의 높은 가격에 반기를 들었다. 중남미에는 식민 지배에 저항한 용기 있는 원주민 여성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북미와 남미에서 많은 노예 여성들이 그들의 주인에 대항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을 노예로 만든 체제에도 반기를 들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부르주아 여성들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 인권선언)이 여성의 권리를 다루지 않은 걸 비난했다. 1세기 후, 파리의 노동자계급 여성들은 1871년 코뮌에서 영웅적으로 바리케이드를 건설해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정부를 방어했다. 파리코뮌은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했다. 그러자 여성들은 부대를 만들어 프랑스 부르주아지가 코뮌을 유혈 진압할 때까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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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 년 전 파업에 나선 미국 로렌스 지역 여성 노동자들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수백만 여성, 특히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특권층 여성이 영국, 프랑스,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 투표권을 요구하며 몰려나왔다. 미국에서는 이런 여성참정권 운동가의 많은 수가 인종차별적 편견에 부딪히며 노예제 폐지를 위해 싸웠다. 흑인 여성들은 여성운동 내부의 인종차별에 부딪히면서 투표권을 위해 단결했다. 그들은 또한 다른 기본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린치 행위에 맞서기 위해서도 뭉쳤다. 중남미와 카리브해 전역에서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그들이 박탈당한 모든 권리를 위해 싸웠다. 많은 경우 이 여성들은 그들의 요구를 당시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내걸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유럽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전선에 군대를 보내는 것에 맞서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며, 열차를 세우고 무기와 군수품 생산을 방해했다. 그들은 전쟁 때문에 생겨난 생필품 부족과 가격 폭등에 대한 저항의 최전선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섬유 노동자들은 1917년 파업을 선언하고 , 평화, 군주제 타도!’를 외치며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억압받고 노동자들 중 가장 착취당하던 이들이 노동자운동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의 길을 열었다. 바로 레닌과 트로츠키의 볼셰비키당이 주도한 러시아혁명이다. 혁명은 러시아제정을 끝장냈고, 몇 달 후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노동자정부를 수립했다. 러시아 여성들은 1세기 후에도 대부분의 자본주의적 민주국가들에서 여성들이 쟁취하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는 권리를 손에 넣었다.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용감한 투사 바르톨리나 시사, 탈출한 노예 해리엇 터브먼, 스톤월의 영웅 실비아 리베라, 칠레의 테레사 플로레스와 아르헨티나의 카롤리나 무실리 같은 사회주의 노동자들, 멕시코혁명의 사파티스타 장군인 아멜리오 로블레스, 미국의 조직가 마더 존스, 프랑스계 페루인 페미니스트 플로라 트리스탄, 파리코뮌 전사인 엘리자베스 디미트리에프와 루이즈 미셸, 유럽의 혁명적 국제주의자 클라라 체트킨과 나데즈다 크루프스카야, 그리고 나데즈다 요페처럼 스탈린주의에 맞서고 반대한 러시아 여성들, 미국의 마블 숄과 클라라 던, 브라질의 파트리샤 가우바우, 그리고 중국의 펀피란 등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수백만 여성의 영웅적 행동과 용기로 역사는 가득 차 있다. 그들 모두가 페미니스트인 건 아니었지만, 모두가 억압에 맞섰고 착취당하는 여성의 편에서 싸웠으며, 그들의 권리와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 우리와 달리 그들 모두가 혁명적 사회주의 관점을 채택한 건 아니었을지라도, ‘빵과장미에 참여한 여성들은 영감을 얻기 위해 그들과 그들의 투쟁을 주목했다.

 

우리는 강한 신념으로 엄청난 역경을 극복하며 여성에게 억압이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한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여성들의 전통과 유산을 자랑스럽게 계승한다. 이런 신념, 그녀의 용기와 헌신 덕분에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 지도자의 한 명이 됐다.

 

더 많은 권리, 더 큰 불만: 지난 수십 년간 여성의 모순된 유산

 

지난 반세기 동안 서구 여성 대부분, 특히 중심부 국가들과 대도시 여성의 삶은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바뀌었다.1) 불과 몇십 년 만에 교육과 공직에 여성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법과 규범이 여성 투쟁의 결과로 폐지됐다. 여성들은 민주적 권리를 쟁취했고, 아버지와 남편의 가부장적 후견으로부터 법률적 독립성을 얻었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은 그들 자신의 인생 계획을 결정하고 그들의 신체와 성적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다.

 

여성이 더 많은 권리를 얻는 지름길은 없었다. 이런 권리가 모든 여성에게 동등하게 확장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이 어떻게 여성을 대의기구의 최상위 집단에 포함해 왔는지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주요한 두 제국주의 국가의 대표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과 영국의 테레사 메이 같은 여성들은 지배계급의 초반동 정책을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바티칸 성직자의 지위를 제외하고는 여성이 권력의 그 어떤 위치에라도 접근하는데 거의 아무런 법적 장애도 없다. 이런 성과는 여성과 학생들이 정치조직에 참여하고 정치토론이 이뤄지는 집회에 참가하는 게 금지됐던 독일제국에 맞서 로자 룩셈부르크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투쟁했던 시대로부터 확연하게 벗어난 것이다.

 

그렇게 쟁취한 권리의 대부분은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으로 투쟁강령의 개념을 잡고 통합할 수 있었던 1960~70년대 여성운동의 결과다. 그런데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성적 불평등은 여성과 남성 개개인이 갖고 있는 각자의 특유한 문제가 아니다. 성차별은 사적인 영역에서의 대인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차별은 셀 수 없이 많은 개인들의 이야기에서 패턴처럼 재현돼 나타난다. 각각의 개인적인 경험은 그것의 진정한 구조적 특성을 변증법적으로 보여준다. ‘당연한거라고 여겨진 것은 사실 복잡한 사회-역사적 과정의 결정체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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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장미여성 노동자들의 집회

 


1960~70년대에는 제국주의, 인종차별, 이성애 중심주의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제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이것은 서구의 자본주의적 착취에 맞서 그리고 동유럽 노동자국가들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억압에 맞서 봉기한 대중의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급진화 과정 한복판에서 이뤄졌다. 식민지와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민중은 제국주의에 대항해 일어났다.

 

일부 분석가들은 수많은 여성의 일상생활에서 성취된 변화를 이전 세대 여성의 삶과 비교해 진짜 혁명적인 거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런 변화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며,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거나 가부장적 억압을 제거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1960~70년대의 운동은 다수 대중을 야만적인 굶주림, 전쟁, 오염, 홍수와 가뭄, 실업, 비참한 처지로 내모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끝낼 수 없었다. 오늘날 극빈층 15억 명에 속한 사람 중 70%가 여성과 소녀들이다.

 

젠더 억압과 그것의 자본주의적 기원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권리 신장은 뿌리 깊은 성차별 그리고 가부장적 폭력과 선명하게 대조되며 동시에 나타난다. 해마다 150만에서 300만 명의 여성이 성폭력에 희생된다.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매년 50만 명의 여성이 임신 합병증으로 사망하며, 매일 500명의 여성이 안전하지 않고 은밀한 낙태 시술 중 사망한다. 성매매는 막대한 이익을 낳으며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이 됐다. 이와 함께 특히 반식민지 나라들의 가난한 소녀와 젊은 여성을 겨냥한 인신매매도 늘어났다. 96천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 문맹 인구 중 70%가 여성과 소녀들이다. 여성 노동인구 숫자는 급격히 증가했다. 여성이 현재 노동력의 40%를 차지하고, 이들 여성의 50.5%가 저임금 불안정노동에 종사한다. 여성들은 이중노동을 수행한다. 우선 몇 시간을 그들의 직장에서 일한 뒤 집에서 몇 시간 더 가사노동을 한다는 얘기다.

 

최근 우리는 몇몇 나라에서 여성의 권리를 더욱 후퇴시키려는 정치적 우경화를 목격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 여러 주 정부가 밀어붙인 공세를 바탕으로, 여성의 낙태권을 전면 부정하려 한다. 유럽에서는 우익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낙태, 동성결혼, 그 밖의 여러 민주적, 시민적 권리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부추겼다.

 

이전 시기에 계급투쟁과 페미니즘의 등장을 낳은 대중의 급진화가 이뤄졌지만, 그 시기가 패배로 끝나고 일부는 포섭되면서 이런 결과를 낳았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에 자본가들의 헤게모니를 뒤흔든 시위, 파업, 전쟁, 혁명적 상황 전개에 대한 자본주의의 맹렬한 반격일 뿐이다.

 

정당과 노동조합을 비롯해 대중을 기만하는 개량주의 지도부의 역할 덕분에 자본주의는 수백만 명을 실업으로 몰아넣은 경제 정책을 실행하며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노동자계급은 분열되고 일자리는 이전됐으며, 계급투쟁이 약화되면서 개인주의와 각자도생이데올로기가 강화됐다. 이런 패배를 강요하기 위해 지배계급은 피착취계급의 배신적 지도자들, 특히 스탈린주의자들과 유럽 제국주의 나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협조에 의존했다.

 

지배계급은 또한 가부장적이고,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며, 인종차별과 식민 지배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도전한 사회운동의 가장 체제전복적인 측면을 동화시키고, 포섭하며, 약화시키기 위해 양보하기도 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쟁취한 권리는 대중이 강요하는 새로운 정치 상황을 지배계급이 승인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승리는 직장에서 증가하는 여성의 숫자와 불만에 대한 응답이었다. 자본주의는 노동력 공급을 늘려야 할 필요를 채우기 위해 임금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증가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성과를 공격했다. 자본가들은 그들이 언제나 써먹을 똑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임금을 낮추고 성별과 법적 지위 등에 따라 노동자를 분열시키기 위해 산업예비군을 늘리는 것 말이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는 오랜 공동 투쟁의 역사를 가진 노동자계급과 사회운동 사이의 분리가 두드러졌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불행과 폭력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을 포기했다. 다른 한편, 혁명적 시야도 잃어버리고 그들 자신의 지도부가 배신하면서 노동자계급은 협소하게 규정된 경제투쟁에 묶여버렸다. 이 수십 년간의 보수주의 회복기 동안 해방을 갈망했던 여성들은 따라 할 만한 본보기가 없었다.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즉 전혀 사회주의가 아니었던 스탈린주의 관료적 노동자국가들은 여성에게 결코 해방을 뜻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사회주의는 여성해방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었다. 그들은 기존 체제에 반대하려는 그 어떤 시도든 전례 없는 괴물 같은 형태의 지배와 배제를 만들어낼 거라는 확증만을 봤다. 스탈린 체제는 가족 질서를 재확립하고 아내와 어머니로서 여성의 역할을 장려했다. 낙태권은 박탈됐다. 성매매는 차르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범죄화됐다. 스탈린 체제는 공공 빨래방, 구내식당, 공동주택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렸다. 또한 당내의 모든 여성 조직을 파괴했다. 이런 사례들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이후 파괴한 1917년 러시아혁명의 성과 중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퇴보한 노동자국가들이 관료화하고 최종적으로 패배함으로써 자본주의는 무적이라는 생각이 자라났고,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급진적으로 변혁하자고 요구하는 그 어떤 전략도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우리는 20세기 동안 쟁취한 권리들이 (비록 소수만이 온전히 누리고, 폐기될 위험에 항상 처해 있지만) 어느 정도의 승리를 의미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것은 신자유주의라는 형태로 보다 깊고 근본적인 패배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 대중이 더 이상 급진적인 변혁을 상상하지 못하게 되면서, 해방이라는 발상은 버려졌고 진보적 개혁과 권리 증진이라는 전략으로 교체됐다. 체제 내부로부터변화를 일으킨다는 완전히 유토피아적인 전략이 조장됐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유토피아적인 발상이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 대신에, 대중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내놓을 것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볼품없는 자본가 민주주의 내에서 시민권을 확장하자는 요구가 제기됐다. 사회운동이 이런 방향을 선택한 것은 문화적, 사회적, 도덕적 질서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라는 경제적 착취체제가 별개의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체제는 1970년대 운동의 패배와 구소련의 몰락 이후에 도전받지 않은 채로 있었다.

 

이로 인해 민주국가라는 범위에서 권리를 추구하는 페미니즘이 생겨났다. 이런 종류의 페미니즘이 수십 년의 신자유주의 기간에 지배적인 흐름이 됐다. ‘민주국가는 중립적인 세력이 아니다.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인 것이고, 폭력을 이용해 자본가의 이익을 보장한다. ‘민주국가는 기생하는 한 줌의 지배계급이 수많은 인간을 착취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그것은 사유재산 보호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피착취자에게 폭력을 휘두를 권리를 독점한다.

 

이 시대에 우리는 부부강간이 배우자의 권리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점, 성적 학대는 문화적 관습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점, 거리에서의 괴롭힘은 사소한 모욕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점에 대해 법적 인정을 받아냈다. 그것이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국가가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투쟁 목표와 반대되는 결과가 얻어졌다. 여성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권리를 가지게 됐고 가부장적 억압에 짓눌리는 여성의 고통이 더 잘 드러나게 됐지만, 가부장적 폭력은 개인의 문제로 취급되고 부르주아 형법이 요구하는 대로 개인의 범죄로 처벌될 뿐이다.

 

여성 억압이 자연적인 게 아니라는 점을 밝히기 위해, 계급사회에서 성차별이 구조의 문제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우리의 삶과 대인관계에 가부장제가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수십 년을 투쟁했는데, 어떤 개인들의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며 치명적이기까지 한 행동만이 부각됐다. 국가기구와 제도를 포함해 자본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자체는 오명을 쓰지 않은 채 모든 책임에서 벗어났다. 이것은 마치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여성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자본가 민주주의는 이미 법 앞의 평등을 당신에게 허용했다. 해방은 당신 스스로 책임져야 할 개인 문제다.”

 

보수 우파는 능력주의, 권한 부여, 평등한 기회라는 자유주의 개념에 기반한 그들만의 페미니즘도 만들어냈다. 이방카 트럼프조차도 여성이 직장에서 최고 지위로 올라설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겠다며 여성을 위해 더 나은 시스템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수년간 사용해 온 전략이다. 요컨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자기 논리에 발목이 잡힌 나머지 우파의 공격에 맞서지도 못한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에서 나타난 여성들의 투쟁과 트럼프의 집권에서 볼 수 있듯이,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이 연계된 기업 페미니즘은 위기에 처해 있다. 선택된 소수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압도 다수 여성의 요구를 채택하는, 대중 정치운동이 되려는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민주적 권리를 이 착취체제에 대한 규탄으로, 다수의 고통에 대한 고발로 이어가는 페미니즘, 이 체제의 타도를 목표로 삼는 페미니즘만이 진정으로 해방적일 수 있다.

 

개혁과 처벌: 반동적 유토피아

 

마침내 우리는 형법을 포함한 모든 제도를 갖춘 정치 체제가 우리를 성차별의 희생자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여성은 여전히 젠더 폭력, 인신매매 조직에 의한 납치, 괴롭힘과 성적 학대, 그리고 거리, 학교, 사무실, 교회, 가정에서 벌어지는 강간의 희생자들인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버티기 어렵고 우리의 건강과 삶을 파괴하는 착취의 희생자다. 우리는 전쟁이 야기하는 희생자이며, 여성 살해의 희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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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레푸블레카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는 빵과장미

 

 

가부장제는 우리가 무력한 희생자이고, 우리 스스로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피해자이며, 국가는 법원과 경찰서 등에서 우리를 더 희생시킨다. 국가권력은 우리가 억압의 근간을 근본적으로 변혁할 힘이 없다고 믿기를 원한다. 그들은 국가가 폭력 가해자들에게 개별적인 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우리의 요구가 제한되기를, 그럼으로써 우리의 종속상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똑같은 제도에 순응하기를 원한다. 이를 달성하려면 여러 세대에 걸친 여성 투쟁의 흔적을 지워야 한다. 여기서는 남성들에게 억울한 감정을 불어넣고, 자본에 억압받으며 착취당하는 여성들과의 연대의 끈을 자르는 방식이 요구된다. 처벌과 개혁의 전략을 선택하려면 우리는 대부분의 여성이 살아가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무시해야 하며, 따라서 역사를 관통하는 여성의 투쟁 결의의 원천이었던 것을 제쳐놓아야 한다.

 

빵과장미의 여성들은 가부장제가 바라는 무력한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우리를 희생시키는 조건들은 억압적인 사회 질서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원천이기도 하고, 전 세계 수많은 사람과 연대해 행동하도록 강력한 신념을 끌어낸다. 역사를 통틀어 노예가 된 남성과 여성의 반란을 추동한 것은 언제나 불꽃처럼 피어오른 사회적 증오였다. 19세기 말 공산주의자 루이즈 미셸은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이 역겨움을 느낄 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 넌더리 날 때, 그리고 낡은 세계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킬 때, 그들을 조심하라. 그날 새로운 세상이 탄생할 것이다.” 우리, ‘빵과장미의 여성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위해, 오늘날 모든 인류를 짓누르고 여성을 두 배의 무게로 짓누르는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우리는 부탁하지 않는다, 우리는 빵과 장미의 권리를 요구한다

 

빵과장미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 볼리비아, 멕시코, 스페인 여성들로 구성된 국제조직이다.(여기에 더해 프랑스, 미국, 페루, 독일, 이탈리아, 코스타리카, 베네수엘라에서 빵과장미가 조직됐다. - 옮긴이) 우리는 독립적인 여성 노동자들, 학생들과 함께하는 4인터내셔널 트로츠키주의분파3)의 투사들이며, 1914년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회주의자는 시각이 좁고, 사회주의자가 아닌 페미니스트에겐 전략이 결여돼 있다고 말한 미국 사회주의자 루이스 닐랜드의 견해를 공유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 착취체제를 끝장내는 사회혁명을 통해서만 여성해방의 토대를 확립할 수 있다고 여긴다. 아래에서 우리는 빵과장미의 몇 가지 핵심 주장을 제시하겠다.(계속)

 

 

주석


1. 우리가 주로 서구사회를 논하는 것은 역사적 전개 과정에 차이가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로까지 논의를 일반화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빵과장미의 경험은 중남미, 유럽, 미국을 바탕으로 한다.


2. 이 점에서 우리는 급진 페미니즘 경향과 중대한 차이가 있다. 그들 대다수는 여성해방을 남성으로부터 여성이 해방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시기는 여성 억압의 근간이 여성의 재생산능력을 수탈하는 데 있는지, 모든 사회계급의 남성들이 여성의 사랑과 애정을 포함한 비임금 노동을 착취하고 그 노동의 산물을 수탈하는지 등의 논쟁을 촉발했다. 이 논쟁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유물론적 방법을 활용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사노동이 노동력을 공짜로 재생산하는 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가부장적 억압 사이에 오늘날 존재하는 뗄 수 없는 관계를 강조했다.


3. ‘트로츠키주의분파-4인터내셔널의 조직들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혁명적국제주의조직(RIO), 아르헨티나의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볼리비아의 제4인터내셔널을위한혁명적노동자동맹(LOR-CI), 브라질의 혁명적노동자운동(MTR), 칠레의 혁명적노동자당(PTR), 스페인의 계급대계급(CcC), 미국의 레프트보이스, 프랑스의 혁명적공산주의동맹(CCR), 멕시코의 사회주의노동자운동(MTS),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노동자동맹(LTS), 우루과이의 FT-CI. 미국에서는 트로츠키주의분파-4인터내셔널 구성원들이 레프트보이스를 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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