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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2019~20년 프랑스 공공부문 총파업에서 ‘현장노동자 조정위원회’의 역할: 어떻게 현장노동자들은 관료적 지도부를 압박해 파업을 지속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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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양준석 조회 16,051회 2021-11-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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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프랑스에서는 201912월 초부터 20203월 코로나 사태 직전까지 연금개악에 맞선 공공부문 노동자 총파업이 전개됐다. 총파업 한복판에는 국영철도(SNCF) 수도권본부와 파리교통공단(RATP)의 현장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정위원회가 있었다. 이 조정위원회는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였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소중한 영감을 던지는 이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2020217일 다니엘라 코베가 프랑스 혁명적 좌파의 온라인신문 <연속혁명>에 실었던 글을 번역해서 옮긴다.

 

* 아래 기사를 함께 참조하기 바란다.

프랑스의 평조합원들이 파업 사수를 조직했다다니엘라 코베 인터뷰

http://nht.jinbo.net/bbs/board.php?bo_table=online1&wr_id=545

 

원문

https://www.leftvoice.org/self-organization-how-french-rank-and-file-workers-have-circumvented-bureaucratic-leaders-to-continue-the-strik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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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파리교통공단-국영철도 현장노동자 조정위원회(프랑스의 5개 노총 가운데 하나로 친자본 성향인) 프랑스민주노동총연맹CFDT가 정부와 개별 협상에 나서자 그 본부건물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항의집회가 끝나자마자 CFDT 사무총장 로헝 베르지는 조정위원회를 고소했다. 이 사건으로 조정위원회는 총파업 지속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면서 미디어의 폭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조정위원회는 국영철도에서 가장 급진적인 수도권본부와 파리교통공단의 현장노동자들을 대표했다. 조정위원회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또 어떤 성격을 갖고 있을까?

 

17일 이전에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정위원회의 활동은 이미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조정위원회는 노조 지도자들이 총파업을 중단시켜 버린 연말 연휴기간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223일에는 파리교통공단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연 뒤, 리용역에서 기습시위를 조직해서 자동운행되던 지하철노선 두 개 가운데 하나를 마비시켜 버렸다. 1226일에는 동역에서 생라자르역까지 3천여 명의 행진을 조직해 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노동자들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12일에는 집권여당 당사 앞에서 항의행동을 벌였다. 115일에는 부당하게 해고당한 아다마 시세와 연대하기 위해 데리셰부르그 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117CFDT 본부건물 앞에서 항의행동을 벌이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조정위원회의 활동반경은 기습시위를 조직하는 것보다 훨씬 넓었다. 조정위원회는 파업노동자들이 노조 조직체계와 독립적으로 자기조직화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번 조정위원회는 1980년대 후반 철도노동자들과 간호사들의 조정위원회 이후로 가장 멀리 나아간 경험이었다.

 

조정위원회는 그 절정기에 버스차고지 15, (철도와 지하철이 교차하는 통근라인인) RER 라인 2, 지하철 라인 5, 국영철도 수도권본부의 여러 역과 주요 단위들에서 온 대표자들을 포괄했다.

 

그 모든 것은 913일에 시작됐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은 2019913일이었다. 그날 파리교통공단 노동자들만 파업에 나섰다. 본격적인 대결은 한참 뒤, 그러니까 연금개악안이 공표된 뒤에 벌어질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하지만 총파업이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많았다. 노조 지도자들 때문에 지지가 모아지지 않는다면 총파업은 객관적인 어려움에 부딪칠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조 지도자들은 일련의 패배와 잘못된 투쟁지도로 불신받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부 노란조끼 시위대가 노조를 거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리교통공단 노동자들의 90% 이상이 참여한 파업은 대중적 파업의 유효성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2008년에 대통령 사르코지가 파업이 있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와 정반대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노동자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날 파리교통공단 본사 앞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노동자들은 노조 지도자들이 들으라고 그들의 투쟁계획을 집약한 구호를 힘껏 외쳤다. “12월에는 무기한 파업이다! 12월에는 무기한 파업이다!”

 

노총들은 (노동총동맹CGT의 파리교통공단지부 지도부가 잠시 머뭇거린 뒤에) 현장노동자들의 압력을 받으면서 총파업 돌입 날짜를 125일로 합의했다. 125일 총파업 돌입은 점점 더 확고한 기정사실로 간주됐다.

 

파리교통공단의 913일 파업은 국영철도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국영철도는 2018년 철도개혁안에 맞선 파업에서 패배한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었다. 파리교통공단과 국영철도의 노동자들은 유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는데다가 (RER 같은 데서는) 서로 섞여서 일을 하기도 하는 까닭이었다. 줄기차게 전개된 노란조끼 시위도 영향을 미쳤다. 국영철도 노동자들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해갔다. 10월 중순 샹파뉴-아덴에서 교차로 충돌사고가 발생해 부상자가 다수 발생하자, 바로 그날 기관사·승무원 17천여 명이 작업중지권을 발동하며 작업을 거부했다. 10월 하순 샤티뇽 철도정비창 노동자 수백 명이 노조 교섭 기간 부과된 제한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비공인파업에 나서 대서양으로 향하는 고속철도의 3분의 2를 멈춰 세웠다.

 

조정위원회의 출발점: 페이스북 그룹과 파리교통공단-국영철도 회합

 

이러한 상황 속에서, 125일 시작될 무기한 총파업을 고대하는 파리교통공단과 국영철도 수도권본부 노동자들 사이의 접점이 매우 빠르게 수립됐다. 그 시작은 파리교통공단-국영철도 노동자들: 단결이 힘이다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그룹을 만든 것이었다. 거기서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던 노동자들은 1016일 생드니에서 첫 번째 회합을 열었다. 그 회합을 제안한 것은 인터스테이션이라는 집단으로 조직돼 있던 철도 노동자들이었는데, 그 집단은 2018년 철도개혁안에 맞선 파업 이후에 형성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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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파리교통공단-국영철도 회합10월과 11월 사이에 세 차례 열렸다. 노동자들은 12월 총파업을 향해 연결망을 건설하고 공동 활동에 착수하면서, 조정위원회의 맹아를 구축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의 밑바탕에는 대통령 마크롱이 연금개악을 완전히 철회할 때까지 투쟁해야 한다는 아주 명확한 입장이 깔려 있었다. 이러한 현장노동자들의 입장을 노조 지도자들에게 계속해서 제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 동료들을 끈질기게 교육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파리교통공단과 국영철도 노동자들의 합동 순회가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세 번째 회합부터는 교사들도 결합하기 시작했다.

 

총파업이 시작된 뒤에도 회합은 계속 열렸다. 126일에 회합이 열렸고, 그다음 주에도 열렸다. 그때까지는 이 회합에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영역에서만 참여하고 있었다. 혁명적 좌파의 조직원이 있거나 접촉자가 있는 영역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전환점이 된 1220

 

12월 하순에 이르러 회합은 도약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파업노동자들의 조정위원회라고 할 만한 틀이 만들어졌다.

 

1219, 노총들은 정부와 교섭을 마친 뒤에 연말 휴가기간 휴전, 즉 총파업 중단을 결정했다. CFDT(주로 화이트칼라를 조직한) 자치노조연맹UNSA은 입장이 명확했다. CGT는 암묵적으로 그런 입장이었다. CGT 사무총장 필립 마르티네즈는 휴전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은 채, 총리공관 앞에서 “19일 연합행동의 날 노동조합들이 다시 만날 것이라고 선언했다.

 

국영철도와 파리교통공단 파업노동자들에게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소식이었다. 이미 무기한 총파업을 2주째 전개해 온 상황이었다. 휴전은 총파업의 종결을 뜻할 것임을 그들은 매우 빠르게 알아차렸다.

 

아나스 카집은 2018년 철도파업 때 널리 알려진 철도 노동자로서 많은 파업노동자들에게 본보기가 돼 있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일부 이름 있는 TV토론 프로그램에 나가서 연금개악안의 기초가 된 델레부아 보고서에 포함된 모든 사항을 조목조목 비판한 까닭이었다. 아나스 카집은 노조 지도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배신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총파업에 미칠 후과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19일 저녁 온라인신문 <연속혁명>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토론 생방송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여러 영역의 파업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토론 생방송은 거대한 성공이었다. 4천 명 이상이 참여했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수만 명이 녹화본을 시청했다.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은 명확했다. 노동조합의 휴전 선언을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아나스 카집은 토론 생방송에서 연휴 기간을 관통할 투쟁계획을 토론하기 위해 다음날 실제 회합을 열자고 제안했다.

 

현장노동자들이 파업을 조정(조율)한다는 생각이 갑자기 모든 이들에게 긴급한 과제로 다가왔다. 그 전까지는 그저 정치활동가들의 일로 보였던 게 말이다. 이것은 노조 지도자들의 입장에 굴하지 않고 파업노동자들의 의지를 관철하고 파업을 지속할 수 있으려면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노동조합의 배신과 현장노동자들의 등장

 

다음날 열린 회합 또한 성공이었다. 회합은 연대단결노총SUD 철도지부 소속으로 생라자르역에서 일하는 동지가 제공한 지하층에서 열렸는데, 1백 명 이상이 참여했다. 버스차고지 12곳 이상, RER A노선과 B노선, 지하철의 몇 개 노선, 국영철도의 여러 영역에서 대표자들이 함께했다. 열린 토론 분위기 속에서 파업노동자들은 연휴 첫 주 동안의 계획을 도출해 냈다. 1221~22일 주말에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행동을 벌이고 쇼핑센터에서 파업기금을 모으기로 했다. 23일 월요일에는 파리교통공단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버스차고지 피켓 시위대에게 퍼붓는 탄압을 규탄하기로 했다. 26일 목요일에는 파업노동자들이 직접 조직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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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일 집회에는 수천 명이 참석했다. 그러고는 리용역으로 옮겨가 기습시위를 벌여 총파업기간에도 운영되던 자동화 노선 두 개 가운데 하나였던 지하철 1호선을 몇 시간 동안 마비시켰다.

 

이날 언론은 125일 총파업 돌입 이후 2주가 넘도록 미디어에 등장하지 않았던 세력을 발견하고서 말을 잇지 못했다. 노총들의 휴전 선언 아래 가려져 있던 것은 바로 현장의 파업노동자들이었다. 현장노동자들은 총파업 중단을 단호히 막아섰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총파업을 더 멀리 밀고 나아갔다! 이날 현장노동자들의 전투적 기세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경찰이 기차역 밖에서 포위했을 때 현장노동자들이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폴리스라인을 뚫어버리면서 주변의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환호를 받은 것이다.

 

가족모임과 피켓시위를 오가며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낸 뒤에, 이제 막 출범한 조정위원회는 26일 거리로 돌아와 동역에서 생라자르역까지 행진을 조직했다. 이날 행진의 아이디어는 파리교통공단의 한 노동자가 냈는데, 그는 19일 페이스북 토론 생방송 때 파업노동자들이 노조와 독립적으로 시위를 조직하는 게 가능한지 아나스 카집에게 질문했다. 행진은 20일 회합 때 결정됐고, SUD 철도지부 노동자들이 (집회신고나 방송차 대여 같은) 실무를 지원했다.

 

이 전투적인 시위 호소에 응답해 3천 명 이상이 쏟아져 나왔다. 파업노동자들이 안전부터 행진통솔까지 모든 임무를 떠맡았다. 행진 마지막에 행해진 연설들에는 이 행진을 성공시켰다는 자부심이 묻어나 있었다. 파비용--부아 차고지에서 온 카림은 이렇게 선언했다. “오늘 말한 이들은 현장노동자들이었다. 거리에 나온 이들도 현장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는 오늘 우리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뭉친 것을 보았다. 우리는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이날 행진에는 노란조끼 시위대도 상당수 참여했다. 노란조끼 시위대 제롬 로드리게스는 확성기를 들고서 파업노동자들의 자주성에 경의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훌륭합니다. 여러분은 지도자가 필요 없습니다. 노총도 필요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마치 노란조끼 같습니다. 거리에서 여러분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연금개악 반대만이 아니라 체제 전복을 향해 함께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조정위원회는 스스로를 반노조기구로 여긴 적이 없었다. 그래서 행진대오에게 이틀 뒤로 예정된 수도권지역 노조연합시위에 결합하자고 호소했다.

 

파업노동자들의 목소리

 

조정위원회의 펀치를 날리는행동은 파업노동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파업은 계속될 것이며 휴전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언론에 보여주는 데서, 그럼으로써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조정위원회는 행동을 조직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조정위원회는 현장의 파업노동자들이, 또한 125일 이후 지금까지 날마다 피켓라인을 지키고 파업집회에 참석해 온 모든 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했다.

 

아나스 카집은 사실상 조정위원회의 대변인이 됐다. 그는 행동이 펼쳐질 때 언론에 현장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또한 TV토론에 나가 정부 대표자들과 직접 대결했다. TV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정부 대표자들은 아나스 카집을 상대하느라 꽤 어려움을 겪었다. 아나스 카집이 파업노동자들의 단호함을 그대로 쏟아내는 데다가, 종종 연금개악을 옹호하러 나온 집권여당 의원들을 능가할 정도로 델레부아 보고서를 철저히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업노동자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하려는 열망은 여기에 제한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정위원회는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첫 번째 기자회견은 1231일 대통령 마크롱의 신년 메시지에 파업노동자들이 즉각 대응하는 형태를 취했다. 파리 북쪽의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정위원회는 이렇게 말했다. “2020년에도 연금개악에 맞서 단호히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는 말씀에 앞서 먼저 모든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대통령의 썩어빠진 전략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겠습니다. 연금개악은 노동자들과 미래 세대에게 불안정한 세상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의 모든 노동자 그리고 청년들이 우리와 함께 이 투쟁에 나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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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위원회는 그밖에도 19일 시위에 대한 탄압과 파업노동자들에 대한 징계회부를 규탄하기 위해서, 117CFDT 본부건물 앞 항의행동 이후 정부와 노총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파업을 조직하고 확장하며 탄압에 맞서는 수단

 

조정위원회는 파업 그 자체를 조직하고 조정하는 데서도 효율적인 수단임을 입증했다. 특히 이 점은 버스차고지 피켓라인에 매일 아침 결합하던 지지자 상당수가 연말휴가 기간에 결합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버스차고지 피켓라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빛을 발했다. 조정위원회는 피켓 로테이션을 전술로 채택했다. 매일 아침 파업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은 파리 북쪽과 남쪽의 두 버스차고지에 돌아가며 집중했다. 그들은 종종 버스가 출발하지 못하도록 차단해 낼 수 있었다. 어떤 때는 피켓 자체의 힘으로 그렇게 해냈다. 어떤 때는 차고지 관리자가 진압경찰을 부르자 파업에 합류하지 않고 있던 동료노동자들이 이를 참지 못하고 작업중지권을 발동하면서 그렇게 되기도 했다.

 

조정위원회는 국영철도와 파리교통공단 두 회사의 파업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조정위원회가 나서서 대학, 공립학교, 민간기업 등 많은 영역의 노동자들과 회합을 가졌다. 대표단을 조직해서 토탈사의 그랑퓌 정유공장과 PSA그룹의 푸아시 자동차공장 노동자들을 만나러 갔다.

 

조정위원회는 또한 파업노동자들과 지지자들에 대한 경찰과 고용주들의 탄압에 맞서는 데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업노동자가 구류 처분을 받을 때마다 조정위원회는 자신들의 동료가 석방될 때까지 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조직했다. 또한 파업관련 행위로 징계절차에 회부된 모든 파리교통공단 노동자를 방어하는 데에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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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라비디의 사례가 전형적이다. 파리 18구에 있는 벨리야 차고지에서 파업을 앞장서 조직했으며, 조정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하니는 파업 이전에 벌어진 사건을 이유로 파리교통공단의 징계에 회부됐다. 조정위원회는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파리교통공단 건물 앞에서 두 번의 큰 집회를 조직했다. 그 압력에 밀려 사측은 애초 해고로 이어질 수 있는 1개월 정직징계를 추진하다가 ‘15일 정직으로 물러섰다. 조정위원회를 통해 국영철도 노동자들과 파리교통공단 노동자들 사이에 깊은 유대감이 자라난 가운데, 르부르제에서 일하는 철도노동자들은 하니 라비디가 징계로 입게 된 임금 손실분을 보상하는 데 돕기 위해 연대의 마음으로 자신들의 파업기금에서 500유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파업의 지도력이 되지는 못했지만, 현장노동자들의 대항수단이 된 조정위원회

 

조정위원회는 파업의 지도력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려면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특히 파업의 기둥 가운데 하나였던 지하철에서 말이다. 총회나 파업위원회 같은 더 견고한 기반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는 파업으로 비롯된 교통의 어려움과 10년 이상 큰 파업을 겪지 못한 데 따른 경험의 부재가 결합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국영철도 안에서도 더 깊이 확장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여기서는 노조 지도부의 통제력이 더 강하게 먹혔다.)

 

하지만 조정위원회는 현장노동자들의 대항수단으로 작동했다. 연휴기간 동안 현장노동자들이 휴전 호소에 반대하고 파업을 재개하라고 주장한 것은 노조 지도부들에게 실질적인 압력이 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리교통공단 노조 지도자들이 정부와 비공식 회합을 가질 때 (파업노동자들이 나타나 시위를 벌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장소들을 선택하도록 강제한 것은 바로 그런 현장노동자들의 압력이었다. 현장노동자들의 압력은 경영진들이 책략과 교섭의 여지를 거의 가질 수 없게 밀어붙였고, 허망한 복귀를 막아냈다. 조정위원회는 현장노동자들이 행사해 낸 그런 압력의 의식적이고 조직화된 표현이었다. 조정위원회는 파업이 12월을 넘기며 지속된 데서, 운송영역에서 파업 자원이 (특히 재정적 측면에서) 고갈되기 시작했을 때 다른 영역들이 파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는 데서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파비용--부아 차고지의 파업 지도자 카림은 조정위원회의 역할을 이렇게 아주 잘 요약해 냈다. “조정위원회가 없었다면, 노총들은 12월말에 아주 편하게 파업중단을 선언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로 파업이 끝났을 것이다.”

 

자신감의 구축, 전투적 핵심의 형성, 노동자 민주주의의 경험

 

조정위원회가 수행한 역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면서, 주체적 측면에서의 중요한 성취를 빼놓을 수는 없다. 현장 파업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비노조원이었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조 지도자들이 이끄는 파업, 노조 대표자들만 떠드는 집회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조정위원회 속에서 파업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과 가능성에 대해, 자신들의 집단지성에 대해, 다른 이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에는 이런 종류의 회합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조정위원회에 참여한 파업노동자들은 함께 토론하는 법을 배웠고, 의견이 다르면 논쟁했고, 다수 의견에 따라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몇 주 동안 집단적인 투쟁계획을 수립해 낼 수 있었다. 회합을 거칠수록 조정위원회라는 틀과 그 구성원들은 점점 더 뚜렷하게 성숙해졌다. 그들은 파업의 전략, 노조 지도부의 역할, 파업을 확장시키는 데서의 장애물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고, 점점 더 나은 해결책을 함께 찾아 나갔다.

 

다수의 여성 파업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었던 것도 조정위원회를 통해서였다. 그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파업을 이끄는 것뿐만 아니라 조정위원회에서도 역할을 수행했다. 대표적으로 르부르제 철도노동자 로라, 플랑드르 차고지 기계기사 나디아, 지하철 5호선 기관사 아나느가 있었다. 이 여성 투사들은 몇 주 동안 남성 동료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에 참가하고, 조정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는 데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하여 조정위원회는 견고한 전투적 핵심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힘을 자각했고, 노조 지도부의 역할을 깨달았으며, 연금문제를 훌쩍 뛰어넘는 데까지 관심을 가져 나갔다.

 

그들은 현장노동자들로부터 뻗어 나온 진정한 지도자들인데, 파업노동자들 속에서 이와 같은 의식적인 층이 출현한 것은 연금개악에 맞선 투쟁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자산일 뿐만 아니라 더 일반적으로는 프랑스 계급투쟁을 위한 자산이 될 것이다.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퇴각을 조직하는 법을 아는 것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자. 현재 총파업은 확실히 약해졌다. 소수의 중핵만이 총파업을 이어 가면서 다른 부문으로 총파업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조정위원회에 참여하는 파업노동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분위기는 패배감이나 사기저하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파업노동자들은, 연금개악에 맞선 투쟁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소수 노동자들만이 참여하고 있으며 승리할 전망을 갖지 못한 총파업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투쟁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들은 조직을 유지한 채 다른 영역들에서 (특히 지금은 청년들 사이에서) 강력한 운동의 가능성을 계속 찾을 것이다. 징계절차를 확대하고 있는 파리교통공단 경영진의 공세에도 맞서나갈 것이다. 또한 정부와 연금개악에 맞선 총파업 등 진정한 투쟁계획을 도출하기 위한 전국적 회합을 조직할 전망을 갖고, 조정위원회 사례를 프랑스의 다른 영역과 지역들로 일반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자기조직화를 보여준 이 특별한 경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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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