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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부동산기업들에게 한 방 먹인 9월 26일 주민투표 결과: 독일에서 시작한 ‘오징어게임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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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3,461회 21-10-04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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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부동산기업인 도이체보넨등의 몰수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선 독일 베를린의 시위대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게임’. 인간을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며, 비행기에 타기 직전 발걸음을 돌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든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미 오징어게임 시즌2가 진행되고 있다면?

 

저들이 만든 게임을 거부한 사람들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번듯한 집 한 채 구하기 힘든 현실, 그 집을 얻기 위해 영끌을 거듭하며 빚더미에 오르고, 빚을 갚기 위해 죽어라 일하느라 그 집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며 생명을 소진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삶과 꼭 닮았다. 그들은 생사를 건 게임을 거부하지 못하고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즐거움을 위한 제물로 바쳐진다.

 

최근 독일에서 이 게임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났다. 926일 베를린에서 총선과 함께 부동산(임대주택) 국유화를 추진하기 위한 주민투표가 이뤄졌다. 175,000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받으면 성립되는 이 주민투표는 4개월 만에 35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성사됐다. 찬반을 밝히는 투표용지에는 베를린 시는 3,000채 이상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민간 부동산업체의 주택을 국유화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부동산업체들의 주택을 몰수하는 방법으로는 현 시장가격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으로 보상한다고 명시했다. 전국에 40만 채, 베를린에 4만 채의 집을 갖고 있는 보노비아(Vonovia), 그리고 전국에 15만 채, 베를린에 11만 채의 집을 갖고 있는 도이체보넨(Deutsche Wohnen) 등 거대 부동산기업들은 이 주민투표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독일 사례를 똑같이 적용할 순 없다는 주장

 

투표 결과는 노동자, 민중의 승리였다! 56.4%의 찬성으로 임대주택 국유화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 투표 결과에 영향을 받는 임대주택 규모는 24만 채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부동산투기에 대한 사회적 규제를 강화하려는 독일의 흐름을 냉소적으로 다뤄왔던 국내 극우 신문들에겐 안 좋은 소식일 것이다.

 

민주당 세력의 반응도 께름칙하다. TBS 방송 프로그램 뉴스공장을 진행하는 김어준은 흥미로운 소재인 것처럼 독일의 부동산 국유화 운동을 소개하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면서도 독일 사례를 똑같이 적용할 순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나라의 부동산 광풍에 비하면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선방하고 있다는 칭찬과 함께 말이다.

 

물론 언제나 다른 나라 사례는 우리와는 다른 조건과 상황에서 다른 주체들의 행동과 함께 이뤄진 결과라는 의미에서 똑같이 따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독일 사례를 거론하면서 똑같이 따라할 순 없을 거라고 말하는 건 하나마나한 얘기이며, 단지 은근히 선을 긋는 의미만을 갖는다.

 

그렇게 선을 긋기 전에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지금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부동산 광풍이 한국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독일의 상황은 자본가들과 부자들이 선호하는 부동산 문제를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것의 결과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독일에선 주택임대사업이 거대 자본가들의 손아귀에 점점 더 집중되고 있다. 보노비아, 도이체보넨 등의 부동산기업들이 수십만 채 이상의 임대주택을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덩치는 더욱더 커지는 중이다.

 

심지어 부동산 국유화 운동이 한창 진행되던 올해 525일 독일의 1위 부동산업체 보노비아와 2위 업체 도이체보넨이 합병하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 523일 임대주택 국유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불과 이틀 뒤에 이들은 합병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두 업체가 결합하면 베를린 시 전체 임대주택의 9%를 장악하게 된다.

 

한몸으로 뒤섞이는 권력과 자본

 

기업결합 계획을 공개한 이 기자회견은 베를린 시청에서 이뤄졌다. 당연하다는 듯이 베를린 시장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이 장면은 독일에서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고 임대료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겨냥한 흉기로 돌변하는 데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며 그동안 주택 문제를 해소하는 데 기여해 왔던 공공아파트를 민간 부동산기업들에게 팔아넘겼다. 부동산기업들은 이들 주택의 리모델링을 했다는 명분으로 임대료를 크게 올렸다.

 

베를린 시민의 85%가 임대료를 내며 생활하고 있는데

지난 10년 사이에 임대료가 두 배가량 올랐고

소득에서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45%까지 치솟았다.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민간기업의 자율성’(문재인 정부가 좋아하는 바로 그것)에 맡겨놓은 결과다. 그런데도 당시 기자회견에서 도이체보넨 대표 미하엘 찬(Michael Zahn)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의 이익을 도시에 다시 투자하겠다. 노후주택을 리모델링하고 새 주택을 짓는데 .”(2021531일자 오마이뉴스) 요컨대 지금껏 임대료 폭등을 주도하고 수많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수탈해온 바로 그 방식을 앞으로 더 거대한 규모에서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투명하게 내비친 것이다.

 

미친 집값, 이제 그만!”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임대료로 지불해야 하는 생활을 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베를린의 노동자 민중은 주거 문제를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19년에는 거대 부동산기업들의 임대주택을 몰수하고 국유화하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도이체보넨 몰수운동이 등장했다. 올해 5월 베를린 시위의 대표 구호는 미친 집값, 이제 그만!”이었다.

 

926일 주민투표로까지 이어진 이 운동은 부동산을 이용해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는 거대 자본가들을 직접 겨냥했다는 데에서 상당히 뚜렷한 성격을 지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 참가자들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지 법률적, 제도적 접근에 제약하지 않고 직접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며 힘을 내보였다는 점이다. 좀처럼 역동적인 투쟁이 벌어지지 않는 독일에서 부동산 국유화를 위한 시위는 지금까지와는 두드러지게 다른 사회 분위기를 보여줬다.

 

물론 이 투쟁의 와중에 두 개의 거대 부동산기업이 하나의 초거대 기업으로 합병하고 당당하게 기자회견까지 개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자신의 길을 계속 가려 할 것이다. 부동산기업들은 이번 주민투표로 채택된 결의안이 실제 법안 성립으로까지 이어지면 위헌소송을 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주류 정당들의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 국유화 결의안을 법안으로 만드는 건 베를린 시의회에서 논의될 것인데, 전통적인 우익정당뿐만 아니라 사민당과 녹색당도 민간 부동산업체들의 임대주택을 몰수하는 데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유상몰수라는 한계가 있을 뿐더러, 기층 당원들은 찬성하는 데도 말이다. 유일하게 좌파당(DIE LINKE)이 몰수에 찬성하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좌파당이 베를린 시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동안 공공아파트 민영화가 이뤄졌고 그 결과 임대료 폭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설사 지금 좌파당이 몰수에 찬성하는 입장을 냈다고 하더라도 그 신뢰도는 떨어지는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올해 9월 총선에서 지지율도 하락했다.

 

똑같이 적용해야 할 것

 

이제 상황을 요약해 보자. 일련의 대중투쟁을 바탕으로 진행된 베를린 시 주민투표와 부동산 국유화 결의안 통과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통을 전가하며 이익을 챙겨가려는 거대 자본가들에게 통쾌하게 한 방 먹인 중요한 사건이다. 특히 다른 무엇보다 대중 자신의 집단적인 투쟁의 힘으로 이 과정을 관철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똑같이 적용할 순 없다는 김어준 부류의 주장과 달리 이런 측면은 똑같이 따라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하지만 이번 주민투표와 그 결과로 모든 게 종료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이것은 일종의 결의안이기 때문에 베를린 시 입장에서 부동산 국유화를 강행할 의무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부동산 거대 자본가들은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무력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저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고, 농락하고, 지배하는 시스템을 지금 이대로보존하려 할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시위와 주민투표는 그 규칙에 더 이상 잠자코 복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주민투표를 성사시키고 성공적으로 한 단계를 돌파한 베를린의 노동자 민중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후에도 계속 집단적인 투쟁의 힘을 조직하고 밀어붙여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동산 광풍의 또 다른 지옥인 한국에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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