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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과 열사들에게 더한 모욕이 있을 수 있는가? - 삼성 탄원서 사건에 대한 단호한 징계와 근본적 성찰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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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6,809회 2018-05-25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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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간부의 탄원서 사건은 노동자가 ‘민주노조’ 깃발을 올린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간부 조건준이 삼성 노조파괴 주범 최평석 전무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쓴 사실이 드러났다. 22일 JTBC는 “삼성, 노조무력화 위해 … 상급단체 간부 포섭 정황”이라는 보도를 냈다. 삼성 측이 A씨(조건준)에게 기준단협 날인을 독려했고, 조건준의 아내가 운영하는 심리상담소와 계약을 맺기로 했다는 의혹을 전했다. 조건준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지회도 업체 선정은 노조의 자체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이 문제 역시 명확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이 글에서는 그 부분을 제외하고 <참세상> 보도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 탄원서 사건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짚고자 한다.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이 왜 이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지 다루려 한다.

  

살인자의 손에 피가 마르기도 전에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다. 최평석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파괴의 주범이고 최종범, 염호석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살인자다. 아직 살인자의 손에 피가 마르지도 않았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조파괴에 맞서 온몸을 내던지고 있다. 그런데 명색이 금속노조 간부라는 사람이 살인자를 위한 탄원서를 썼다. 이것은 삼성재벌에 맞서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 노조파괴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능멸이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조건준은 사건 보도 후 맨 처음에 “어떤 사건이든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고 했다. 도대체 노조파괴 살인자에 대한 탄원서에 어떤 맥락이 있을 수 있는가? 노동자들이 그걸 모를 정도로 어리석을 줄 아는가? 조건준이 2014년 소위 블라인드 교섭(비공개 1대 1교섭)이라 불린 밀실교섭을 주도한 사실은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징계는커녕 이걸 인정했다. 조건준과 금속노조의 공개적 반성은 없었다. 

 

이런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건준이 내세울 그럴 듯한 핑계와 명분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글에서 살인자가 구속되지 않아야 교섭이 잘 될 수 있다는 논리야말로 논할 가치가 없고, 최소한 노조파괴 주범들의 구속과 처벌이 교섭의 전제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던 것이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는가?

 

조건준은 4월 둘째 주에 최평석이 만남을 요청했고 최평석이 삼성 노조파괴 수사에 대한 대책을 물어 ‘직고용 발표’와 ‘삼성 무노조전략 폐기’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최평석이 자회사 방식을 얘기하길래 자신은 장난하냐며 반박했고, 직고용을 발표하면 “당신이 나하고 (2014년) 교섭라인에 있었다는 사실을 법원에 증명해주겠다, 그러면 당신 죄가 경감되지 않겠냐고 했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지회로부터 직고용 발표를 할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조건준은 삼성이 먼저 제안한 게 아니라 자기가 먼저 제안했다며, 교섭전술의 한 수단으로 탄원서를 제기했다고 주장한다. 믿을 수 없지만 삼성이 먼저 제안한 게 아니라 치자.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에서 조합원 몰래 사측 노무관리자를 만나고, 또한 조합원이 토론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사측에게 제기하는 ‘교섭전술’도 있었던가? 현장의 조합원들은 이렇게 우롱당해도 되는 대상인가?

 

교섭전술이란 말도 있을 수가 없는 말이다. 도대체 누가 당신에게 사측 노무관리자를 만나라는 권한을 줬는가? 누가 당신에게 그런 거래를 할 권한을 줬는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결코 당신에게 ‘교섭권한’을 준 바가 없다. 교섭권한을 준 자는 오직 삼성자본일 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인가? 또는 삼성자본의 요구를 대행하는 ‘브로커’인가? 

 

이보다 큰 모욕이 있을 수 있는가?

 

단순히 ‘교섭라인에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도대체 왜 ‘죄의 경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2014년 블라인드교섭이라면, 조건준 말고도 최평석이 교섭라인이라는 걸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삼성에도 많을 것이다. 결국 탄원서에서 ‘교섭라인’을 강조한 이유는 조건준과 최평석의 거래가 상당히 결정적이었다는 이미지, 최평석의 존재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이미지를 연출하겠다는 의도다.

 

그렇게 되면 최평석은 법까지 어기면서 노동자들을 악독하게 탄압한 살인자가 아니라 사실은(?) 직고용까지 결단할 정도로 삼성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포장될 수 있게 된다. ‘죄의 대폭 경감’의 알리바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직고용은 최평석을 내세운 삼성 자본에 맞선 조합원들의 피어린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최평석의 ‘결단’에 따른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조건준은 탄원서에서 “모든 노무관리에 노조 인정과 부정의 양 측면이 작용한다. 노조 인정은 다양한 대화로 나타나고 노조 부정은 부당행위로 나타난다”고 썼다고 한다. 즉 최평석은 한편으로는 노조를 파괴하려 한 사람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조를 인정하고 공식, 비공식적으로 대화하려는 사람이므로 후자의 측면을 십분 감안해서 선처해달라는 것이 조건준의 입장이다. 가장 악랄한 노조탄압의 사령탑이 이제 노조를 인정하는 사람으로 둔갑한다.

 

게다가 직고용 후속조치를 위해서는 최평석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선처해 가급적 석방해달라는 것이다. “과거 대화 창구였고 현재 직고용 교섭은 물론 미래 노사관계 정착을 고려할 때 노사관계 복합성을 잘 이해하는 사용자(최평석)가 필요하다”고 썼다.

 

이것이 완전한 굴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민주노조운동의 기본적인 원칙과 상식을 완전히 짓밟은 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민주노조운동의 아주 기본적인 원칙과 상식은 노조파괴 살인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응징이다. 그런데 조건준은 이걸 완전히 짓밟았다. 노조파괴 살인자는 이제 단호한 처벌과 응징의 대상이 아니라 교섭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이 된 것이다. 최종범, 염호석 열사에게, 그리고 지금도 노조파괴를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이보다 더한 모욕이 있을 수 있는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노조파괴 살인자의 죄를 경감시켜주면서까지 정규직에 목매는 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하는가? 결코 아니다. 그리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평석이 없어도 정규직화를 위한 후속교섭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당당히 외치고 있다. 노동자의 자존심이고 의리다. 도대체 동료를 죽인 살인자, 그것도 반성조차 하지 않는 살인자를 존중할 노동자가 어디에 있는가? 또한 교섭의 결과는 교섭 실무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전혀 아니다. 투쟁의 힘이 결정할 뿐이다. 그런데 조건준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으로,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초보적 원칙도 모르는 바보로 전락시키려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도 이보다 더한 모욕이 있을 수 있는가? 

 

그 누가 브로커 짓을 성과라 포장할 수 있는가?

 

삼성전자서비스가 8,000여 명의 정규직화를 발표한 이유는 이재용 석방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가 대단히 크고, 노조파괴 수사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여론을 달랠 대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종범, 염호석 열사의 숭고한 희생과 삼성전자서비스 동지들의 치열한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조건준의 거래와 탄원서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투쟁 의의를 대단히 희미하게 만들어버린다. 다시 말해 마치 조건준이 그런 거래를 했기 때문에 정규직화의 물꼬가 트인 것처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까지 주었다. 삼성전자서비스 투쟁의 의의와 대의가 큰 타격을 입었다. 왜냐하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당당한 투쟁을 통한 정규직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성 노동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거래가 이뤄졌다. 민주노조운동의 의의와 대의도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도 조건준은 계속 자신의 범죄를 ‘고통스러운 결단’, ‘유의미한 교섭전술’로 둔갑시킨다. 마치 자신이 거대한 희생을 감당한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만 확인해도 그는 ‘브로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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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가들이 그들만의 밀실교섭을 벌이며 노동자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에 대해 분노해 왔다. 
민주노조 간부의 ‘밀실교섭’은 괜찮은가? (사진_노동과세계)

  

첫 번째 사실. 조건준은 최평석을 만났다. 이 만남은 공식 교섭은 물론이고 2014년 블라인드 비공식 교섭 같은 것도 아니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어떠한 허락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의 어떠한 합의도 없이, 그냥 만난 것이다. 이 만남에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교섭’이란 포장지를 두를 어떠한 근거도 없다. 그냥 자본의 실세를 ‘개별적’으로 만난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은 이런 ‘만남’, 이런 ‘관계’에 대해 뭐라 부르는가? 이제 막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라도 그에 대해 ‘밀실만남’, ‘밀실관계’라 규정하고 징계를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조건준은 2014년 블라인드교섭으로 만신창이가 됐다며 고뇌와 고통을 호소한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는가? 그렇다면 블라인드교섭 정도도 아닌, 밀실만남에 왜 나가는가? 이걸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두 번째 사실. 조건준은 이런 밀실만남과 거래를 ‘비공개교섭과 교섭전술’로 포장한 뒤, 마치 자신의 제안으로 정규직화를 이끌어낸 것처럼, 최소한 자신의 제안이 정규직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처럼 묘사한다. 그런데 알리바이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 조건준은 밀실만남에 간 뒤, 다시 말해 밀실만남에 가서야 그런 거래를 제안했다. 만약 이 밀실만남에서 조건준의 거래를 최평석이 안 받았으면, 그 만남은 무엇이 될까? 그냥 만난 것, 즉 삼성 자본의 핵심과 금속노조 간부가 그냥 개인적으로 만난 것이 된다. 그게 진실이다. 그런데 이 밀실만남에서의 거래가 성립하자, 그 거래는 갑자기 조건준에 의해 교섭전술로 묘사된다. ‘결과’가 이러니, 밀실만남을 밀실교섭으로 인정해주고, 이 추악한 거래까지도 정규직화를 획득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최악의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사실. 끝까지 최평석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을 기만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죄를 경감 받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과 열사 앞에 공개적으로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교섭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평석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조건준을 비밀리에 만났다. 그래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에 항복하는 모양새 대신, 삼성 자본이 선심 쓰는 것처럼, 마치 대단한 결단을 한 것처럼 포장하려 했던 것이다.

 

만약 조건준이 진정으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에게 복무하려 했다면, 공을 조합원들에게 돌리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데 그는 조합원들의 단결과 투쟁, 주체성을 무시하고, 자신의 거래를 과대포장하고 있다. 삼성이 과연 그 따위 말에 항복하고 양보할 것으로 믿는가?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브로커의 세 치 혀가 아니라 조합원들의 투쟁력이다.  

 

목적만 정당하다면 만사 OK(?)

 

조건준은 직고용과 무노조전략 폐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정당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허용할 수 있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어떤 방식의 직고용, 어떤 방식의 무노조전략 폐기인지가 중요하다. 노동자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키우고 용기와 자기희생 정신을 북돋는 수단만이 허용될 수 있고, 또한 필수적이다. 비선라인, 비공개교섭 등은 이러한 수단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브로커 짓은 말할 것도 없다.

 

거꾸로 자본가들은 이런 것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유리한 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철저히 활용하려 한다. 비공개교섭을 받지 않으면 교섭을 할 수 없다고 윽박지른다. 적이 세운 이런 원칙 앞에서 굽실거리는 사람이 진정 적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때로는 순전히 교섭을 통해서 당장의 실력보다 넘치는 성과를 획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투쟁하지 않는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며, 때문에 전체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고찰할 때 재앙의 폭은 커진다. 우선 그것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희생한 대가로 (소수 노동자들이) 획득하는 것일 수 있다. 전체 노동자투쟁의 심장을 제거하기 위해 단사 노동조합에 하사되는 개량(가령 연대파업의 중심을 깨기 위해 한두 대기업 노동조합에 주는 개량)의 경우다. 다음으로 만일 노동자 스스로의 투쟁으로 쟁취한 게 아니라면, 그것은 자본과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빼앗아갈 게 분명하다. 노동자의 투쟁력이 살아있지 않아 저항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섭은 투쟁의 힘만을 반영한다. 교섭으로 뭔가 진실하고 대단한 것을 따낸다는 건 환상이다. 

 

이러한 원칙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게 더욱 절실하다. 무노조전략은 삼성 자본의 변하지 않는 목표다. 삼성 자본은 무노조전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눈엣가시다. 이걸 제거해야 무노조전략이 유지될 수 있다. 당장은 이재용과 삼성이 코너에 몰려 있기에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지만, 이후 눈엣가시를 제거하기 위해 발악할 것이다. 결국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삼성그룹 안에 민주노조의 거대한 흐름을 열 것인지, 아니면 탄압을 못 이기고 가라앉을 것인지의 기로 앞에 놓일 것이다. 게다가 삼성은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도 기만적인 정규직화를 밀어붙이거나 정규직화 성과를 사실상 무로 돌리려 발악할 것이다.

 

결국 이 갈림길에서 무엇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의 운명을 결정할 것인가? 아무리 뛰어난 교섭전문가일지라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직 삼성 자본과 맞장 뜰 수 있는 단결투쟁의 힘이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이것이 단결투쟁력을 약화시키는 밀실교섭에 대해 앞으로 더욱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이유다.

 

말로는 교섭을 투쟁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원칙을 인정하는 노조관료들도 많다. 그들도 일반원칙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조관료들은 그 말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다. 그리고 온갖 핑계거리를 만든다. 예를 들면 관료들은 2014년에는 민주노조의 상식과 다르게 삼성과 ‘블라인드교섭’을 했는데, 이처럼 민주노조 상식과 다른 ‘삼성 노사관계의 특수성’이 없느냐고 그들은 반문한다. 노사관계의 조건이 100% 똑같은 곳은 어디에도 없다. 만약 삼성 노사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한다면 포스코 노사관계의 특수성도 인정해야 하고, LG 노사관계의 특수성도 인정해야 한다. 그 때마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이 바뀐다면 우리는 어떻게 함께 싸워 나갈 수 있겠는가?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 계급성은 사업장의 특수성과는 무관하게, 노동자의 운명을 지켜주는 공통의 원칙이다. 특수성은 이러한 원칙을 사수한다는 전제 아래 그것도 그 한계에 대한 모든 조합원들의 인식과 동의를 바탕으로 극히 제한적으로만 적용될 수 있을 뿐이다. ‘노동자투쟁’이 중심이라는 원칙 자체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결코 침묵할 수 없는 문제 - 단호한 징계가 필요하다!

 

조건준은 블라인드교섭 이후에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판단을 삼성에 전달하는 역할, 그리고 삼성의 판단을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결코 이번 탄원서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거간꾼이 활개 치도록 사실상 용인하고, 심지어 거간꾼의 존재를 활용해 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사태가 앞으로 정규직화투쟁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할 수는 있겠지만, 단순히 ‘금속노조에서 절차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는 태도만으로는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을 정리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블라인드교섭을 비롯한 지난 시절의 오류에 대한 철저한 재평가를 바탕으로 교섭원칙과 투쟁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온전한 정규직화를 위한 강력한 투쟁을 조직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아직 탄원서를 제출하게 된 과정과 내용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는데 충분한 사실 확인이나 소명 과정도 없이 30년 동안 운동한 사람을 낙인찍는다고 비판한다. 물론 사실 확인이나 소명 과정은 필요하다. 상담업체 선정문제도 그렇다. 그런데 탄원서를 쓴 사실 자체는 분명하고, 이건 합리화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낙인? 민주노조운동과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 그리고 노조파괴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등에 칼을 꽂은 게 과연 누구인가? 이런 끔찍한 계급배신행위에 대한 비판마저 물타기하려 한다면, 적당히 봉합하려 한다면, 민주노조운동의 규율을 단호히 적용하지 않는다면, 과연 민주노조운동은 오류와 실책을 극복하면서 단 한 발이라도 전진할 수 있겠는가? 탄원서문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단호한 징계는 민주노조운동의 깃발을 들고 전진하기 위한 사활적이고 필수적인 출발점이다.

 

나아가 한 사람의 문제를 넘어 교섭주의, 대리주의, 협조주의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비판을 끌어내야 한다. 관료주의, 그리고 노조관료 전체에 맞선 노동자투사들과 평조합원들의 공동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이런 배신의 뿌리를 걷어낼 수 있다. 

 

노동자운동의 근본철학을 다시 묻는다

 

조건준은 이렇게 계속 이렇게 항변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이 정규직화와 무노조 경영 폐기에 기여했다고.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조건준의 행동에는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과업”이라는 노동자운동의 제1원칙이 완전히 빠져 있다. 노동자투쟁의 성과는 대중 스스로의 집단적 단결로 쟁취한 것일 때만 전진의 발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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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자신의 단결투쟁의 힘으로,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가와의 거래가 아니라.

 

밀실교섭에는 이 원칙을 훼손하는 치명적인 대리주의, 엘리트주의가 깔려 있다. 이런 태도에는 결국 조합원대중이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태도는 조합원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민주노조의 진정한 힘(조합원대중의 힘)을 갉아먹을 뿐이다. 하지만 자본가와 정부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힘이다.

 

관료들은 항상 이렇게 변명한다. 상황이 어렵다. 다른 방법이 없다. 비밀교섭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 굳건하지 못한 자신들이 아니라 조합원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방관자도 아니고 허수아비도 아니다. 조합원들은 결코 그걸 원하지 않는다. 지도자들이 비밀교섭을 하면서, 조합원들을 방관자, 허수아비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태로 내몰리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자민주주의라는 훌륭한 수단이 있다. 조합원들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한다면 조합원 스스로 집단적 토론을 거쳐 자신들의 전진과 후퇴, 그리고 타협의 정도를 현명하게 결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교섭단을 비롯한 지도부를 조합원들이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가능하다.

 

당연히 지도부는 조합원들에게 ‘모든’ 교섭과정과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진정한 노동자민주주의는 단지 교섭 결과를 확인하는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들이 투쟁과 교섭의 전 과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조합원들은 자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비판하면서, 민주노조의 진정한 주인공이 돼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이제야말로 정부와 자본과의 거래, 비공개교섭, 투쟁회피 같은 노동자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대해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내 자신의 이익, 내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도 그냥 바라만 보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노동자들의 의식적이고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운동을 건설해내자. 파괴된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하나하나 되살려내자. 새로운 사회는 오직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실현하려는 다수 노동자들의 자주성, 능동성, 단호한 의지를 통해서만 떠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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