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마크롱 정부를 칭송하는 우익언론과 자본가들에 맞서, 우리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파업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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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O Phil des Contrastes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악 시도에 맞서 12월 5일 시작된 프랑스 노동자들의 파업이 완강하게 지속되자, 한국의 우익언론들이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진심어린 ‘지지와 연대’를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연금파탄의 뿌리”, “포퓰리즘에 맞선 마크롱”, “프랑스 대혼란” 운운하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비난했다.
그들에게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칭송의 대상이다. <중앙일보>는 “프랑스 마크롱의 경제개혁 리더십을 보라”며 강력한 노동시장 유연화를 주문했다. 그래야 오히려 일자리가 더 늘어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작년 이맘때 시작돼 연일 격렬하게 진행되던 노란조끼 시위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최근 프랑스 경제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11월 25일자 <머니투데이>).
12월 5일 파업
전경련 관계자가 그런 말을 내뱉은 지 보름도 되지 않아 프랑스는 대대적인 파업 물결로 뒤덮였다. 파업이 시작된 12월 5일 프랑스철도공사(SNCF) 소속 열차 승무원의 85%, 검표원의 73%가 파업에 참여했고, 철도운행의 90%가 중단됐다. 파리 전체 16개 지하철노선 중 2개 노선을 제외한 모든 지하철이 운행을 중단했다. 비행기편의 20~30%가 운항을 취소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사들의 파업 참가율은 전국 기준 55%, 파리에선 78%까지 올라갔다. 8개의 주요 정유사 가운데 7개 기업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이날 하루 프랑스 전역에서 15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의 언론들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시민 불편’, ‘총파업의 불편한 민낯’ 운운하고 있는 동안, 프랑스 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파업 지지율이 69%까지 올라갔다.
마크롱 정부가 원하는 ‘개혁’
자본가들을 위해 기꺼이 부유세 폐지를 추진했던 마크롱 정부는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가 과도하다며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기로 했다. 현재 민간부문 노동자는 가장 많은 임금을 받은 기간 25년을 기준으로, 공공부문 노동자는 퇴직 전 마지막 6개월을 기준으로 연금수령액을 계산하는데, 마크롱은 이제 노동자의 평생 노동기간을 계산에 포함하는 방식으로 바꾸려 한다.
그러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기간도 포함되면서 전체 연금수령액이 자연스럽게 하락할 것이다. 그래서 애초 기대했던 수준의 연금을 받으려면 불가피하게 더 오랜 기간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이미 60세에서 62세로 퇴직 연령이 늘어났는데, 이번 마크롱의 연금개악이 관철되면 다시 64세로 퇴직 연령이 늘어날 전망이다. 더 오래 일하고 더 적게 받는 전형적인 개악이다.
연금개악, 그 이상의 문제
퇴직자로서 이번 시위에 참여한 이브 상트마리(Yves Saintemarie)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단지 연금 문제가 아니에요. 가난하고 불안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나는 노란조끼운동에도 참여하고 조합원이기도 한데, 이런 투쟁들이 하나로 결합해야만 합니다. 우릴 죽이려 드는 정부를 꺼꾸러뜨려야 하니까요.”(“Five things you should know about the ongoing strike in France”, 12월 10일자 Left Voice)
마크롱의 ‘경제개혁 리더십’ 덕분에 프랑스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더 늘어났다는 국내 우익언론들의 선동이 감추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렇게 해서 늘어나고 있는 게 다름 아니라 질 나쁜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점이다.
프랑스에서 비정규직의 비중은 2007년 11%에서 2009년에는 13%로 늘어났고, 2018년에는 16.2%까지 늘어났다. “오늘날에는 기간제 고용이 프랑스 신규 채용의 80%를 차지하고 있다.”(<프랑스 노동시장 개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6년 6월 13일) 그래서 이제는 철도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청소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 오네(ONET) 파업 사례처럼 프랑스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가난과 불안
노동자의 처지가 하향 평준화되는 흐름은 학생들에게도 타격을 가한다. 지난 11월 9일 리옹의 한 대학생이 더 이상 생활고를 감당할 수 없다며 학생식당 앞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이 사건은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겪는 불안정한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청년은 자살을 시도하기 전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규탄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 또 다른 많은 대학생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12월 5일 파업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의 흐름과 맞물리면서 여러 대학에서 총회가 열렸다. 총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연금개악에 맞선 12월 5일 파업에 연대할 것을 결의했고, 일부 대학의 학생들은 총회 후 곧바로 학생식당을 점거하고 무상급식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지속되는 동안 이 파업을 방어하기 위해 학생들이 새벽부터 버스 운행을 저지하는 농성에 합류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공공운수 노동자들과 교사, 학생들이 함께 버스운행 저지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_O Phil des Contrastes)
노란조끼운동과 조직 노동자운동이 결합하며
지난해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노란조끼운동이 한동안 다소 누그러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 12월 5일 파업을 기점으로 노란조끼운동 참가자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투쟁 대열을 이룬 것도 중요한 변화다. 한창 노란조끼운동이 전개되던 국면에서 노조관료들과 일부 좌파조직은 이 운동의 의미를 폄하하고 경계하며 거리를 뒀다. 노란조끼운동 참가자들 또한 개량주의와 관료주의에 찌든 기존 운동에 강한 반감을 느꼈다.
하지만 노란조끼운동과 조직 노동자운동을 연결하기 위해 부단히 목소리를 내고 실천해온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도 있었다. 그런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노란조끼운동 참가자들 전체가 노동자는 아닐지라도) 취업 노동자와 실업 노동자로, 또는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로 분할되는 장벽을 허물어뜨릴 때 비로소 노동자계급으로 단결할 가능성이 열리면서 한층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멀리 전진할 수 있기를
노란조끼운동의 과감함에 영향 받은 노동자들은 자기 현장에서도 과거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올해 하반기에 철도와 학교 등 일부 노동자들은 노조관료들의 통제에 얽매이지 않고 평조합원들의 자주적인 조직을 건설하거나 기층의 총회민주주의를 작동시키며 비공인파업을 실행하기도 했다. 이번 파업에서도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조직하고 사업장의 벽을 넘어 연대를 조직하는 선진 노동자들의 노력 덕분에 12월 5일 하루파업으로 끝나지 않고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17일 열린 3차 총파업대회에는 그간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악에 동조하며 투쟁에 거리를 뒀던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까지 시위에 동참했다.
하지만 마크롱 정부도 그에 못지않게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 시위 참가자의 이야기처럼 “우릴 죽이려드는 정부를 꺼꾸러뜨리려면” 여러 투쟁을 하나로 결합해 더 큰 힘을 끌어내야 한다. 이미 프랑스 노동자들은 1995년 알랭 쥐페 총리의 연금개악 시도에 맞서 대대적인 투쟁을 벌임으로써 정부를 꺼꾸러뜨린 경험과 기억이 있다. 그래서 마크롱 정부는 더 사생결단의 태도로 덤비는 듯하다.
이 대결에서 프랑스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승리한다면, 노동자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끝없이 전가해 이윤을 챙기려는 전 세계 자본가계급의 반동적 계획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마크롱의 승리를 기원했던 한국 자본가들도 낭패감을 느낄 것이며, 반대로 한국 노동자들은 좀 더 자신 있게 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의 투쟁이기도 하다. 우리는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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