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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군사정권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 반동적 쿠데타에 맞서 용기 있게 투쟁에 나선 미얀마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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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597회 2021-02-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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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철도 노동자들이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섰다.

 

 

우리는 미얀마에서 그동안 펼쳐진 억압과 저항의 역사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도 군부의 쿠데타가 용납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에 맞선 미얀마 민중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1일 쿠데타가 일어난 뒤 투쟁에 나선 미얀마의 한 노동자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군부가 다시 정권을 가져갔기 때문에, 군사독재가 이어졌던 과거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어떤 권리도 누리지 못하게 될 거다. 조만간 최저임금 인상이 예고되는 상황이었고 젊은 노동자들은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건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군부가 정권을 쥐면서 모든 게 예전 방식대로 갈 거고, 사장들은 노동자를 억누르고 임금도 삭감할 것이다.”(Stephen Campbell, “What can workers expect in post-coup Myanmar?”)

 

저항에 나선 노동자들

 

군부 쿠데타가 노동자의 삶을 짓누르는 반동적인 역할을 하리라는 걸 미얀마 노동자들은 직감한 듯하다. 권리 박탈이 불 보듯 훤하게 내다보이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할 건지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쿠데타가 발발하자마자 미얀마 민중의 저항이 시작됐다. 군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냄비를 두드리는 시위가 길거리와 주택가를 막론하고 곳곳에서 벌어졌다. 학생들도 시위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의 행동이 두드러졌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확산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SNS를 타고 총파업 호소가 널리 퍼져 나갔다. 의류산업 중심의 공장 노동자, 병원 노동자, 교사와 공무원, 은행 노동자, 철도 노동자와 공항 노동자 등이 파업과 시위에 대거 참여했다. “출근을 계속 거부하면 직원 숙소에서 쫓아내겠다는 상부의 압박이 있지만, 직원들은 군사정권과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항하고 있다.”(파업에 참여한 철도 노동자 발언, 217일자 연합뉴스)

 

정권을 찬탈한 군부 세력은 이런 모습을 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으리라는 걸 보여준다. 이제 비로소 자본주의적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미얀마에선 그만큼 젊은 노동자계급이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당장에는 숫자가 적더라도 강한 응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우리는 이들과 함께 반동적인 군부 쿠데타를 규탄할 것이며, 노동자가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파업을 벌이는 병원 노동자들

 

 

그런데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 성공적으로 쿠데타를 격퇴할 수 있을 것인지는 결과가 미리 보장돼 있지 않다.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진 일은 임금인상 같은 노동조합 쟁점이 아니라 국가권력과 사회의 향방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이고, 정치적 대안이 분명하지 않으면 투쟁의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현재 진행되는 저항운동의 중심 흐름이 아웅산수치와 그의 정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을 지지하는 데 제한되고 있는 상황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정치적 대안

 

아웅산수치는 19888월 일어난 대규모 민중항쟁의 물결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는 지도자로 떠올랐다. 그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군부세력의 탄압으로 오랜 세월 가택연금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도 미얀마 민중은 아웅산수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에 지지를 보냈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마침내 201511월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고 20163월 첫 문민정부가 탄생했다. 202011월 총선에서도 선출직* 의석의 80%를 넘어서는 압도적 지지를 끌어냈다.(*헌법 상 전체 의석의 25%가 군부에 할당되고 이는 선출이 아니라 임명 방식으로 채워진다.) 미얀마의 노동자, 민중이 무엇을 바라는지 분명한 의사표시를 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걸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아웅산수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은 이런 강력한 지지와 열망을 헛되이 소비했다. 그들은 미얀마 사회에 드리운 오랜 군사독재의 그늘을 철저하게 걷어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는 대신, 여전히 강력한 권한을 쥐고 있는 군부와 공존의 길을 걸었다. 2017년 수십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로힝야족(무슬림 소수민족) 집단학살과 관련해서 아웅산수치는 군부의 인종청소 행위를 변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군부와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인들을 기소하고 체포하는 탄압(이른바 형법 505b항에 따른 처벌)은 오히려 과거 정권보다 더 늘어났다.

 

요컨대 아웅산수치와 민주주의민족동맹의 민주주의는 군부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군부의 손바닥 위에서 펄럭이는 깃발에 불과했다. 그 군부의 손목을 비틀어버리기 위해선 1988년의 민중항쟁, 2007년의 샤프란혁명 같은, 아니 그 이상의 대중행동이 필수적이다. 미얀마 노동자 민중은 그런 역량을 갖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그러나 아웅산수치는 혁명적 대중행동이 아니라 군부와의 타협을 선호했다. 그리고 쿠데타로 쫓겨난 상황이 돼서야 민중을 향해 저항에 나서달라고 호소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 파업을 벌이고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노동자, 민중은 자신들의 민주적 권리를 지키길 원한다. 지금까지는 아웅산수치 세력이 대중의 민주적 열망을 수렴하는 정치적 대안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자유주의 시장이 가장 좋은 발전모델이라고 말한 아웅산수치 같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무기력하고 타협적인 모습을 보이며 거듭 노동자, 민중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이다. 미얀마 노동자들이 그런 경험을 딛고 스스로를 정치적 대안으로 세우며 더 멀리 전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연대할 것인가

 

지금의 미얀마 상황을 설명하며 흔히 한국의 군사독재 경험과 1980년 광주항쟁을 빗대어 말하곤 한다. 그런 비교가 전혀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접근은 모종의 착각을 유발하기 쉽다. 마치 우리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직면한 정치적 과제를 오래 전에 훌쩍 뛰어넘기라도 한 것처럼 믿게 만드는 착각 말이다.

 

박근혜가 탄핵될 경우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움직일 계획이 검토되고 있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촛불항쟁에 올라타 정권을 손에 넣은 문재인 정부는 해당 사안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외쳤지만 결국 흐지부지 중단됐다. 미얀마에서든 한국에서든 억압적 국가기구는 언제라도 투쟁하는 노동자를 향해 칼을 겨눌 준비가 돼 있고, 실제로 그렇게 움직인다. 아웅산수치 정권이 민주주의와 인권 간판 아래 기득권 군부세력과 끊임없이 타협했듯이, 적폐청산 노동존중 간판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끊임없이 자본가들에게 충성하는 정책을 집행하며 극우세력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 자들이 노동자운동 속으로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문재인 정부와 협력하는 게 살길이라고 떠드는 부역자들이 민주노총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가장 반동적인 극우세력과 맞서기 위해서라도, 노조할 권리와 민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비틀거리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그들과 철저하게 단절하고 독립적인 노동자운동을 조직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미얀마 노동자들은 정확히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 미얀마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는 핵심이 있다. 한국 노동자, 민중이 과거에 겪어온 투쟁의 경험만으로 미래를 이끄는 등불이 될 순 없다. 지금 이곳에서 일체의 자본가정당들과 단절하고, 더 이상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농락당하지 않으며, 노동자계급의 힘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한국에서 그런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미얀마와 그밖의 모든 나라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군사 쿠데타에 맞서 용기 있게 투쟁에 나선 미얀마 노동자, 민중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연대의 인사를 보낸다. 한국의 노동자들도 다시 한 번 기지개를 펴고, 미얀마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의 길로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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