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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번역 I 세계적인 식량위기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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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양준석 조회 7,662회 2022-06-1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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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기사

Food, Famine, and War


마이클 로버츠  I  2022년 6월 7일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기아에 빠뜨리고 있는 지금의 식량 위기는, 기근과 식량 불안정이 자연과 날씨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식량공급 재앙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더 두드러졌지만, 사실 이 전쟁이 터지기 훨씬 전부터 무르익고 있었다. 식량공급망이 점점 더 세계화한 결과, 다국적 식품기업들이 전 세계 농부들로부터 식량공급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 식품기업들은 수요를 이끌고, 비료공급을 일으켰으며, 대부분의 경작지를 지배했다. 그런데 2008~9년 대불황은 세계적인 식량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리기 시작했다. 대불황이 닥치면서 이윤이 줄어들자, 다국적 식품기업들은 투자를 축소했고, ‘남반구 세계의 식량 생산자들에게 가하는 압력을 증대시켰다.

 

이처럼 식량공급망의 근간에 균열이 생긴 데 덧붙여, 유가 상승, 옥수수 기반 바이오연료를 위한 폭발적인 수요, 높은 운송비용, 금융시장 투기, 낮은 곡물저장량, 주요한 곡물 생산지의 심각한 기상이변, 보호주의 무역정책 확대 등이 뒤따랐다. 이것이 팬데믹이 닥치기 전인 2019년까지 길게 늘어진 불황 속에서 전 세계 식량공급에 펼쳐진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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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2년 저소득·중소득 국가의 GDP 성장률 대비 식품·연료·비료 가격 (출처:유엔식량농업기구·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대불황 직후 식량위기가 상대적으로 짧게 전개된 뒤, 2011~12년 식량가격 폭등이 뒤따랐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옮긴이) ‘원자재 붐이 종결되면서, 식량가격은 한동안 상대적으로 안정되었다. 그러나 팬데믹에 따른 침체가 국제공급망을 붕괴시키면서 운송비용이 솟구치고 비료공급이 고갈되자 새로운 위기가 촉발됐다. 아래 그래프는 국제 곡물가격이 2021년에 2008년 수준에 도달했으며, 2022년에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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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식량가격지수 

 

세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낳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역풍에서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나라가 국민소득에 비해 큰 부채부담을 안고 있는 시점이다. 아프리카는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북아프리카는 거대한 양의 밀을 순수입하는 지역인데, 그 대부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오기 때문에 특히 심각한 식량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는 주로 농업 지역이지만, 점점 증가하는 도시 인구는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수입곡물을 소비할 가능성이 더 높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 농부들은 비료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부풀려진 가격을 주더라도 배송과 외환 문제 때문에 충분한 비료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엄청나게 높은 비용은 농민들의 수익을 잠식할 것이고 생산을 늘릴 동기를 감소시킬 것이기에, 식량가격 상승으로 농민들의 빈곤이 감소하는 효과를 약화시킬 것이다.

 

이미 분쟁과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특히 취약하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예멘은 수입 곡물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북부 에티오피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가운데 하나인데, 지속적인 갈등과 인도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1월과 2월 연속된 열대폭풍과 싸이클론에 강타당해 식량공급 체계가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경제와 기초의료서비스가 붕괴하면서 어린이 사망률이 치솟고 있다. 미얀마의 GDP20212월 군사쿠데타 이후 18% 감소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와 같은 식량 안전과 가격 측면에서의 재앙을 더욱 악화시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곡물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러시아 혼자서 세계 비료의 13%와 석유수출의 11%를 공급한다. 우크라이나는 해바라기유의 절반을 공급한다. 이것은 세계 식량공급 시스템에 엄청난 충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과 러시아 경제 고립의 심화는 수년 동안 식량·연료·비료 가격의 고공행진을 불러올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식량가격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한때 분주했던 흑해 항구 가동을 중단시켰고 들판이 방치되게 했으며, 러시아의 수출 능력 또한 억제했다. 팬데믹은 계속해서 공급망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고, 기후변화는 더 많은 가뭄·홍수·폭염·산불로 세계의 많은 농업 지역에서 생산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엄청난 사람들이 기아에 직면해 있다. ‘영양부족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6억 명을 조금 넘는 수준에서 옮긴이) 몇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다가 2020년에 11,800만 명이 증가했다. 20225월에는 1억 명 이상이 추가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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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년간 세계 영양부족 인구 수

 

긴급기아 상태에 있는 사람들(당장 필요한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수는 지난해 거의 4천만 명이 증가했다. 전쟁은 언제나 극심한 기아의 주요 동인이었으며,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추가로 수천만 명에게 극심한 기아의 위험을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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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기아(긴급한 식량부족상태에 있는 인구 수

 

IMF의 상무이사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나라들에서 식량위기가 부채위기에 덧붙여 찾아온다. 2015년 이후 부채위기에 처하거나 직전에 있는 저소득 국가의 비율이 30%에서 60%로 증가했다. 많은 나라에서 부채 구조조정은 시급한 우선순위다. 굶주림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이자 해결 가능한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다가오는 위기는 바로 지금이 단호하게 행동하고 해결해야 할 시점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재앙에 대한 주류적 해법은 부적절하거나 유토피아적이거나 둘 다이다. 필요한 것은 주요 곡물 생산자들이 물류 병목현상을 해결하고, 비축된 식량을 풀며, 식량수출 제한을 부과하려는 욕구에 저항하는 것이다. 산유국들은 연료·비료·운송비용을 낮추기 위해 원유 공급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 국제기관, 심지어 민간부문도 식량·재정 지원을 통해 사회적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제안 가운데 어떤 것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백만 명씩 굶주리고 영양실조에 빠져 있는 가난한 나라들을 돕기 위해 주요 자본주의 열강들이 하고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지난달 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 내 농부들을 지원하고 식량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15억 유로의 지원패키지를 비롯한 조치들을 발표했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유엔세계식량계획(WFP), 세계무역기구(WTO) 지도자들은 식량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긴급하고 조정된 행동을 촉구했다. 좋은 말이지만 행동이 없다.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를 청산하는 것은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IMF와 강대국들이 제안한 것은 부채상환 연기뿐이다. 이러한 구제마저도 한심한 수준이다. 지난 2년 동안 G20 국가 정부들이 연기해 준 총 부채는 103억 달러에 불과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팬데믹 첫해에 늘어난 저소득 국가들의 부채만도 총 8,600억 달러였다.

 

IMF의 또 다른 해법은 국제화폐인 특별인출권(SDR) 규모를 늘려 추가 원조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IMFSDR 프로그램을 통해 6,500억 달러의 원조를 투입했다. 그런데 SDR 할당량은 부유한 국가들에게로 편파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받은 SDR은 독일 연방은행보다 적었다!

 

거시경제 상황은 이제 식량폭동을 촉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테이퍼링과 갈등의 시대라는 제목의 새 보고서에서 앞으로의 시나리오들을 제시했다. 부채위기가 몇 년째 진행 중인 스리랑카는 핵심 동학을 보여주는 유용한 예다. 팬데믹 기간 스리랑카는 해외에서 오는 송금과 수출이 급감했고, 주요 관광 부문도 혼란에 빠졌다. 성장 둔화는 예산을 압박하고 외환보유고를 고갈시켰다. 이제 스리랑카는 석유와 식품을 수입해 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리랑카의 물자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알 자지라는 70대 남성 두 명이 기름을 사기 위해 줄을 서 기다리다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우유 가격이 올랐고, 종이와 잉크가 부족해 학교 시험이 취소됐다. 스리랑카는 450억 달러의 장기부채를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70억 달러를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한다. 팬데믹 기간에 디폴트에 빠진 아르헨티나와 레바논의 뒤를 스리랑카가 이을 것 같다. 디폴트에 빠진 레바논은 대부분의 밀을 수입해야 한다.

 

공급을 늘리고 비축된 식량을 풀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을 끝내려는 대신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데, 이는 식량위기에 빠진 가난한 국가들의 부채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다. 내가 이전 게시물에서 설명했고 UNCTAD가 동의한 것처럼,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신흥국부채위기를 촉발할 뿐 공급망 혼란으로 초래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데는 아무 효과가 없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을 촉발한 주요 원인으로 공급망 혼란만이 아니라 통화량 폭증을 포착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이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이제 더 이상 재정확장과 양적완화를 마음껏 휘두를 수 없게 됐으며, 따라서 다가오는 경제위기가 국가의 대응능력 고갈로 매우 심각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 옮긴이)

 

강대국들은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보다 시위 증가와 정치적 격변을 더 걱정한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이렇게 말한다. “인플레이션이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식품·비료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전 세계 가계, 특히 최빈곤층에 큰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식량위기가 사회불안을 촉발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된 1840년대에,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주의적 식량 생산이라는 새 체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1846년 이후 곡물법 폐지와 자유무역 승리와 관련돼 있음을 말했다. 마르크스는 이 새 체제영국의 대규모 경작가능 토지의 전환과 연결시켰는데, 이 전환을 추동한 것은 가축 사육·관리 발전을 중심으로 한 식품 생산의 재조직화”, 순환작물 재배, 비료 관련 화학의 발전이었다.

 

자본주의적 식량 생산은 식량 생산성을 극적으로 증대시켰고 식량 생산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1850년대 중반에 이미 이러한 경향이 명백해졌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밀의 거의 25%가 수입되었고 그 가운데 60%가 독일·러시아·미국에서 수입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새로운 형태의 식량 불안정을 야기하는 정기적이고 반복적인 생산·투자 위기를 가져왔다. 기근과 기아의 책임을 더 이상 자연과 날씨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이제 기근과 기아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세계적 규모의 사회적 조직화가 가져온 불평등의 결과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이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칼 마르크스는 기근이 가난한 악마들만 죽였다고 썼다.

 

그리고 산업적 농업과 함께 인간 못지않게 동물에 대한 잔인한 착취와 대우가 발생했다. 마르크스는 미공개 노트에 동물을 가둬놓고 먹이를 주는 역겨운 감옥 시스템에 대해 썼다. “동물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감옥에 갇혀 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동물을 단순한 고기와 대량의 지방으로 바꾸기 위해 뼈의 발육을 방해하는 비정상적인 육종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1848년 이전에 동물들은 자유로운 공기 아래서 최대한 많은 활동성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이제 생명력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것은 세계적인 위기이며, 팬데믹이 그렇게 다뤄져야 했고 기후위기가 그렇게 다뤄져야 하는 것처럼 세계적인 조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세계의 식량 산업이 소수의 다국적 식량 생산업체·유통업체에 의해 통제·소유되고 있고 세계경제가 또 다른 침체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그러한 세계적 조정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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