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 광풍 – 노동운동이 젊은이들에게 제시할 미래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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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70대 노인까지 투자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특히 20대, 30대 젊은층의 주식투자 열풍은 광풍이라 부를 만하다. tvN 보도에 따르면, 20~30대의 54%가 주식에 투자하고 있고 그 중 90%가 작년에 처음으로 주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는 주식투자 열풍을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포장하면서 환영했고, 주식가격 폭등을 정부의 성과로 치장했다. 하지만 최근 기류변화가 감지된다. 우려를 표하고, 대출의 고삐를 죄어서 주식투기 광풍을 억제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그만큼 현재의 주식폭등은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
위험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최근 주식가격은 8개월 내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왔다. 이에 따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주식투자 열풍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벼락거지’에서 벗어나는 계층상승의 사다리로 주식투자에 합류하고 있다. “영어에서 가장 값진 네 단어는 This time, it’s different(이번에는 다르다)”라는, 전설적인 주식투자자 피터 린치의 말을 그들은 신봉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투자가 과연 계층상승의 사다리일까? 아니면 더 큰 몰락의 강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일까? 그리고 만일 주식투자로 더 큰 몰락이 덮친다면, 이 젊은이들은 어떤 방향으로 향하게 될까? 그 경우 노동운동은 어떤 사활적인 과제에 직면하게 될까? 이 글이 답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주식의 원리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선 주식의 원리를 검토해야 한다. 주식가격은 해당 주식이 반영하는 기업가치에 따라 결정되고, 기업가치는 배당금+기업가치상승분에 따라 정해진다. 만약 100만 원짜리 주식 한 주를 구매했는데, 매년 주식배당금으로 3만 원이 지급되고 1년 동안 기업가치상승분이 3만 원이라고 하면 1년 사이에 주식가치는 106만원으로 상승할 것이다. 이 경우 기대수익률은 (6만 원/100만 원) 곱하기 100%로 6%가 된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우리는 주식의 내재가치를 측정한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지금의 주식가격 폭등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기업들의 수익률(이윤율)이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코로나 사태로 그 수준이 더욱 낮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파산위험에 직면한 적자기업들의 비율까지 높게 치솟는 상황에서 깡통주식 위험성도 증대하고 있다. 좀비기업(최근 3년 연속으로 영업이익이 대출 이자보다 작은 기업)의 수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이미 사상 최고정점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IMF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8개국 기업들의 부채 중 40% 가까운 부채가 위험부채다. 미국 등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한국도 그 비율이 20%를 넘어가고 있다. 즉 기업의 내재가치는 최근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다른 외부 요인을 배제한다면, 이 경우 주식가격 폭등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 이윤율이 낮아지므로 배당금+기업가치상승분 모두 아주 낮은 수준에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배당금이 1만 원이고 1년 동안 기업가치상승분이 1만 원이라면 주식 1주의 기대수익률은 (2만 원/100만 원) 곱하기 100%로 2%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면, 이 기업의 주식의 내재가치는 오히려 하락할 것이다. 그런데 2020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대략 –1에서 –1.9%(IMF 예측) 안팎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업들의 평균이윤율이 아주 낮아졌다. 2021년은 3%대의 성장률을 기대하지만, 이건 마이너스 성장을 한 작년을 기준으로 잡은 성장률이므로 2019년 기준으로는 1% 전후의 성장률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식의 내재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미래에 기업가치상승이 높은 수준으로 일어날 거라는 기대감이 있는 경우에 한정될 것이다. 가령 당장에는 배당금+기업가치상승분이 높지 않더라도, 해당 주식이 반영하는 기업이 향후 크게 성장해 높은 이윤율을 기록할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면 이렇게 ‘미래의 가치상승분’을 선반영해서 주식의 내재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경제전망이 상당히 어두운 상황에서 예외적인 몇몇 성장기업을 제외하면 평균적인 주식이 큰 폭으로 내재가치가 상승하는 일은 결코 기대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주식의 내재가치라는 각도에서 접근하면, 주식가격이 폭락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폭등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내재가치와 가격 사이의 괴리
그러나 이 ‘내재가치’가 주식의 ‘가격’으로 반영되는 데서는 추가적인 고려사항이 있다. 이자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자들에게는 은행예금 형태의 이자를 받느냐, 주식에 투자해 이익을 얻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돈을 투자했을 때 그로부터 얻는 이익률이다. 그래서 주식의 가격은 이자율과 긴밀히 연동된다.
가령 평균적인 이자율이 2%라고 치자. 이 경우 100만 원을 은행에 예금하면 1년에 2만 원의 이자수입을 거두게 된다. 이것과 내재가치(배당금+기업가치상승분)가 6% 상승해 6만 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주식 1주를 비교해보자. 이 주식 1주의 가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300만 원을 은행에 예금하는 효과와 맞먹는다. 300만 원에 대한 2% 이자율이 6만 원의 이자수입을 낳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식 1주의 가격은 폭등하게 된다.
역으로 평균적인 이자율이 4%로 치솟는다면, 아울러 기업의 내재가치는 이윤율 하락으로 4%로 낮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100만 원을 은행에 예금하면 기대이자는 연간 4만 원이 된다. 그리고 주식 1주도 연간 4만 원의 이익을 창출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 입장에서 연간 4만 원의 이익을 남기는 주식 1주의 가치는 은행에 맡긴 100만 원의 가치와 동등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식 1주의 가격은 폭락한다.
이처럼 주식의 내재가치와 가격은 이자율 변동에 따라 괴리가 발생한다. 내재가치는 하락하지만 주식가격이 상승할 수 있고, 반대로 내재가치는 상승하지만 주식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저금리와 유동성
주식의 내재가치가 절대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에도 주식가격이 폭등하는 지금의 현상에는 저금리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금을 제외하면 대략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저금리 상황에서는 약간의 기대수익만 있어도 주식가격은 폭등한다. 물론 이런 폭등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화폐가 시중에 많이 있어야 한다. 즉 화폐유동성이 풍부해야 한다.
그런 조건이 지금 구비돼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정부가 막대한 현금을 시중에 풀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11월 중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시중 통화량을 의미하는 광의통화(M2)는 전월대비 27조 9,000억 원(0.9%) 증가한 3,178조 4,000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대비로 9.7% 증가한 규모다.
게다가 은행이자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은행에서 돈을 빼서 주식시장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식시장에 엄청난 유동성을 불어넣는다. 가령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은 최근 654조 4,197억 원으로 8조 8,000억 원 증가한 반면, 상당 기간 돈이 묶이는 2년 미만 정기예적금은 6조 원 감소했다. 언제든 당장 주식에 투자할 채비가 갖춰진 돈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가계의 장기저축성 예금은 1년 전보다 14조 3,706억 원 급감한 반면 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23조 원 이상 늘었다. 은행예금을 헌 돈의 대부분이 주식투자에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게다가 개인들이 엄청난 빚까지 내서 주식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상의 결과 2021년 1월 4일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이 61조 2,719억 원으로 사상 최대에 이르기까지 했는데, 이것은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23조 156억 원)의 2.6배를 웃도는 크기다. 또한 작년부터 현재까지 대략 80조 원의 개인자금이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왔다. 이는 M2(광의의 통화량)의 2% 수준으로 사상 최대치인데 앞으로 그 금액은 1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접근하면 현재의 주식가격 폭등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지속가능할까?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운 거품
우선 주식의 내재가치, 즉 기업의 이윤율은 갈수록 하락할 것이 예측된다. 게다가 30%에 달하는 좀비기업들이 초래할 거대한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초저금리와 화폐유동성은 어떨까? 초저금리를 지탱하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지금 0.5%로 사실상 제로금리나 마찬가지다. 이 비정상적인 금리는 코로나 사태로 기업들의 파산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극도의 불황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으로 도입된 일시적인 조치로 장기간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미 연준이든, 한국은행이든 제로금리 정책은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는 국면에서는 유지 불가능한 임시 조치로 못 박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는 2023년부터 이미 금리인상이 예고되고 있다.
화폐유동성은 어떤가? 천문학적 규모로 정부가 시중에 푼 화폐는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고, 정부재정에 대한 압박도 임계점에 도달해가고 있다. 금리인상과 맞물려 화폐유동성 회수 정책은 조만간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 이미 주식시장으로 흘러가는 대표적인 유동성인 신용대출에 대한 억제책이 시작되고 있다.
게다가 은행 이자율이 정상화되는 반면 주식의 내재가치 하락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국면이 시작되면, 투자자들에게 주식투자가 갖는 매력은 급격히 식을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정부재정 지원이 멈추면서 좀비기업들의 파산행렬이 시작되면 주식시장은 패닉 상태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주식이 휴짓조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급격한 썰물이 시작돼 주식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저금리와 유동성 홍수 속에서 부풀어 올랐던 주식가격은 끝 모르게 폭락할 것이다.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젊은이들
이런 미래의 위험은 정부의 행보 속에서 가장 분명히 드러난다. 주가가 2,500선에 도달할 때까지 ‘동학개미운동’과 주식시장의 눈부신 성과를 운운했던 게 문재인 정부였다. 하지만 최근 역사적 고점을 돌파하면서 코스피 주가지수 3,200선을 바라보게 되자, 정부의 태도가 싹 바뀌고 있다. 정부는 신용대출을 쪼여서 주식시장으로 향하는 유동성을 줄이려 애쓰고 있다. 거품이 너무 심하게 끼어 이제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평균 주식 보유기간이 너무 짧은 단기투자(일명 ‘단타’) 비중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2019년 3월에만 해도 평균 보유기간이 16.1개월이었지만, 2020년 8월에는 4.9개월로 대폭 줄었다. 투기 요소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후 거품이 붕괴되면 이에 따른 파산과 손실은 젊은이들을 더욱 가망 없는 상태로 내몰아 정부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릴 위험이 높다. 게다가 이것은 개미들에게 주식투자자금을 대출해준 금융기관 전반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3분기 말 명목GDP 대비 민간신용(가계·기업 부채의 합) 비율은 211.2%로 전년 동기 대비 16.6%포인트 상승했는데, 그 대부분이 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가령 2020년 8월 통계를 보면, 가계 및 비영리단체 통화량이 전월대비 5조 3,000억 원 증가했고, 기타 부문에서도 7,000억 원 늘었다. 반면 기업부문과 기타금융기관의 통화량이 각각 1조 6,000억 원, 1조 3,000억 원씩 감소했다. 또한 개인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한 금액인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올해 1월 7일 현재 20조 1,223억 원으로 크게 불어났다. 대부분이 20, 30대의 신용대출이다.
금융기관 투자자들이나 해외투자자들의 행보도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작년 내내 이어진 주식랠리는 거의 전적으로 개미투자자들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식가격 폭등으로 기관투자자들이나 해외투자자들은 주식을 팔아서 차익을 실현해갔다. 이들은 주로 매도자 포지션을 취했다. 가령 외국인투자자들은 지난 12월에만 2조 6,880억 원을 순매도(매도-매수)하였고, 작년 한해 전체로는 24조 4천억 원을 순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매수자 포지션을 취하면서 주식가격 폭락을 저지하는 것은 물론 폭등을 뒷받침했던 것은 주로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그 중심에 주식광풍에 올라탄 20, 30대 젊은층이 자리잡고 있다. 새해 들어 개미들은 ‘국민주’로 떠오른 삼성전자를 2조 원어치(2,489만 주) 넘게 사들였다. 같은 기간 은행이나 보험사, 연기금 등 기관과 외국인은 순매도했다. 이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7%로 기관 지분(6.8%)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젊은이들의 정서
주식투자 광풍을 주도하는 20, 30대의 흐름은 어떤 배경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동학개미운동’ 같은 거창한 표어는 투기를 부추기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작품일 뿐이다. 20, 30대가 그런 애국주의에 몰두해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은 완전히 허상이다.
진짜 이유는 우선 부동산가격 폭등에서 찾을 수 있다. ‘벼락거지’라는 유행어처럼, 주택가격이 천정부지로 폭등해버려 무주택자들의 경제적 지위는 더욱 추락했다. 주택을 보유한 이들에 비해 자산가격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 것이다. 물론 20, 30대의 주택 패닉바잉이 있었고, 지금도 지속되는 중이다. 작년에 주택담보대출 신규취급액 288조 원 중 20~30대가 127조 원을 대출했는데, 이것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주택 구매 행렬에 동참할 수 있는 20, 30대는 그나마 대출여력이 있고 수입이 괜찮거나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금수저 계층에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미 주택가격이 너무 폭등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젊은층은 거대한 상실감과 불평등에 신음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주식시장 폭등이 가세했다. 올해 1월 12일 통계청 국가통계시스템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 보유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11억 2,481만 원으로 하위 20%(675만 원)보다 11억 1,000만 원 이상 많았다. 한국에서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 사이의 자산격차는 2017년 100배에서 불과 3년이 지난 2020년에는 166배로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계층상승의 사다리’로 주식투자를 부추기는 자들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을 비롯해 우후죽순 등장했다. 주식은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도 누구든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 3월 코로나 충격을 받으면서 30% 넘게 가격이 폭락한 뒤 빠르게 가격을 회복하고 있는 주식시장은 구원의 동아줄처럼 보였다. 작년 3월 중순 1,500선이 무너졌던 코스피지수는 계속 상승해 올해 1월 초순 3,250선을 돌파해 역사적 고점을 찍었다. 무려 100% 넘는 폭등이었다. 테슬라 주식은 작년 3월 이후 작년 말까지 8배 정도의 폭등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도 운 좋게 큰 수익을 남긴 동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벼락거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층상승의 사다리’로 젊은이들에게 주식투자가 부상했고, 은행예금을 빼거나 신용대출을 받아 돈이 주식투자로 쏠리자 유동성이 폭발해 주식가격은 끝 모를 정도로 폭등했다. 2020년에 20대 평균주식수익률이 20%에 이르렀다.
폭등장세가 펼쳐지자 부동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식시장에서도 젊은층의 패닉바잉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강도와 참여 범위라는 점에서 주식시장에서의 패닉바잉은 더욱 위험한 수준이다. ‘벼락거지’로 전락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이제 부동산에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의 줄임말)을 넘어서서 주식시장에서의 영끌로 확대되고 있다.
썩은 동아줄
젊은층의 주식투자 붐에는 미래에 대한 절망과 불안감이 작용하고 있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 일자리일지라도 정년퇴직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작년에 일자리는 IMF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작년 취업자는 2,460만 명으로, 재작년보다 21만 8,000명이 줄어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다.
그중 젊은층의 일자리가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취업자는 10대에서 50대까지 일제히 감소했지만 특히 20~30대에서 30여만 명 줄면서 감소인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60대 이상에서만 늘었다. 청년층의 실업률은 9%로 평균의 2배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서는 취업을 통한 노동소득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이 젊은층에서 급속히 확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이게 젊은층의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자산소득 창출’이다. 그들이 보기에 ‘불안정한 노동소득’에 의지하지 않은 채 삶의 안정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은 ‘자산소득’을 창출하는 것이다. 주변에서 주택가격 폭등으로 수억의 시세차익을 거둔 사람들, 주식투자로 단기간에 50~100%의 수익을 거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자산소득 창출이 유일한 탈출구로 보인다. 이게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젊은 세대의 패닉바잉을 불러온 결정적 요인이다. 그게 썩은 동아줄이든, 튼튼한 동아줄이든 그건 당장 중요하지 않다. 미래가 너무 암울하다면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현재 이 젊은층에게 주식투자는 ‘구원의 동아줄’이다.
젊은층만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몰락해가는 영세상인들도 주식투자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 당장 뾰족한 수입원이 없는 상태에서 폭등하는 주식가격은 유일한 탈출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썩은 동아줄이다. 그 동아줄을 붙잡고는 안정적인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썩은 동아줄이 끊어지면, 더욱 가혹한 밑바닥과 불안정의 늪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주식투기 뒤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
세계 3대 투자자 중 한 명인 짐 로저스는 한국의 소위 동학개미들에게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주식시장이 성장하면 경험 없는 새로운 투자자들이 돈을 쏟아 붓는다. 많은 돈이 시장에 유입되면 그때 바로 끝물이라고 보면 된다. 한동안 오르긴 하겠지만 그게 끝이다.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또한 “미국 증시가 신기록을 경신하고 한국, 일본 등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지금 끝났다는 얘기가 아니라 끝난다는 신호를 말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이게 주식의 내재가치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주식투자의 귀재로 떠오른 자본주의 핵심 투자자들이 바라보는 현실이자 미래다. 하지만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는 젊은이들이 이런 조언을 들을까? 짐 로저스는 “말해도 듣지 않겠지만”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 여기에는 단순히 일확천금의 심리만이 아니라 미래의 절망으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려는 젊은이들의 처절한 심리가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백 년의 자본주의 주식시장 역사가 명백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수많은 젊은이가 “이번에는 다르다”고 외치게 된다.
하지만 기대가 아무리 절박할지라도, 기대가 미래의 현실이 되는 건 아니다. 주식투기의 미래는 파국으로 정해져있다. 이미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고, 추락은 조만간 시작될 것이다. 그 시점이 다음 달인지, 내년인지 이게 문제일 뿐이다. 이에 대해 투기행렬에 나선 젊은이들은 말한다. “우리도 알고 있다. 언젠가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하지만 당장 오늘은 아니지 않은가? 바로 그 시점에 열차에서 뛰어내릴 준비가 우리는 돼 있다!”
하지만 추락이 시작되면 단 몇 시간 사이에 20~30%가 하락하는 게 주식이다. 단 몇 시간에 전 재산의 30%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들이 주식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내일은 조금 나아지겠지란 기대감이 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폭락장에는 그다음 날 그만큼 또 주저앉아버리는 게 주식이다. 적절한 타이밍까지 거품의 이익은 다 챙기고, 파산 위험을 후발 주자들에게 떠넘기고 철수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내부정보도 없고, 전체 시장의 흐름을 읽어낼 기회도 없으며, 숨 가쁘게 돌아가는 그 몇 시간 동안 일터에서 일해야 하는 이른바 개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
폭탄 돌리기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길은 단 하나가 남아 있다. 평균적인 주식들과는 달리, 미래의 기대수익률, 즉 기업가치상승률이 아주 높은 기업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업의 비중은 상당히 낮다. 게다가 그걸 제대로 예측하는 것은 힘들다. 테슬라, 애플, 화이자 등 전기차, 인공지능, 백신 분야 선도기업들의 미래 수익률은 그나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미 미래 수익률이 과도할 만큼 선반영돼 있어, 오히려 주식의 내재가치와 가격의 괴리는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다. 이 선도기업들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될 위험은 물론 상대적으로 아주 작지만, 그럼에도 폭락 가능성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가령 몇 개월 사이에 8배가량 폭등한 테슬라 주식의 폭락 위험은 다른 기업들의 주식이 갖는 위험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미 증시 급등에 따른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커지면서, 대형 우량주들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노동운동이 그들에게 미래를 제시해야
결국 지금 주식투기 열차에 탑승한 젊은이들은 이제 곧 시작될 ‘폭탄 돌리기’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것이다. 계층상승을 꿈꾸게 만든 구원의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로 판명되는 순간, 그들은 더 암울한 지경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다음은?
‘투기를 통한 자산소득 증대’가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이 확인되는 그 순간, 남은 것은 ‘노동소득’밖에 없다. 안정된 일자리, 충분한 임금 없이는 미래의 불안을 타개할 다른 길이 없음이 젊은이들에게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완화되는 바로 그 시점에, 코로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채택했던 확장재정정책은 끝나고 강력한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의 물결이 본격화할 것이다. 그에 따라 실업률은 낮아지기는커녕 높아질 것이다.
이런 상황은 임금과 일자리 의제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노동운동에 참여하는 대대적인 흐름이 자라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빛나는 미래는 결코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이 젊은층의 일자리와 임금을 지켜내고 쟁취하기 위한 대대적인 계급적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열어주자!” “부유세를 신설해 의료, 교육, 주택 등에서 안정적인 복지제도를 젊은이들에게 제공하자!” “최저임금 대폭인상 및 해고금지법 제정” 등 노동소득으로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끔 이끄는 노동운동의 단호한 기획과 실천이 뒷받침돼야 한다.
만일 조합주의 전망에 갇혀, 노동운동이 이런 계급단결투쟁의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썩은 동아줄에서 추락하는 젊은이들은 어디로 향하겠는가? 마찬가지로 급격하게 파산하고 있는 중간계급들도 어디를 향하겠는가? 이들은 다른 종류의 투기로 향하거나, 줄어드는 일자리와 불안정한 미래를 이주 노동자들이나 노동조합의 책임으로 돌리는 극우들의 선동에 더욱 영향 받게 될 것이다. 극우세력은 절망에 빠진 젊은층의 심리를 파고들어 그걸 파시즘의 기반으로 흡수해갈 것이다. 그리고 이 극우 파시즘은 노동운동의 조직과 권리를 무참히 파괴하는 걸 목표로 할 것이다.
부동산가격 폭등, 주식폭등 등 자산가격의 거품이 꺼질 것이 분명하면 분명할수록, 젊은층과 가난한 중간계급의 분노와 상실감은 더욱 거대해질 것이다. 이러한 젊은층의 거대한 에너지는 사회의 지각변동을 불러올 태풍 같은 위력을 발휘할 것인데, 그 속에서 한국의 정치지형은 거세게 요동칠 것이다. 하지만 이 젊은 에너지가 나아갈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향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기존 정치구조가 흔들리고, 젊은층의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그 에너지는 좌든 우든 극단으로 향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 시기에 젊은층의 분노를 낚아채려는 우익들을 제압하고, 노동운동을 발전시키는 거대한 긍정적 에너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위대한 계급적 결단이 필요하다.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노동자 총단결 투쟁의 전망!” “가난한 민중에 대한 노동운동의 헤게모니!”가 더욱 시급해지고 있으며, 다가오는 시대의 향배를 좌우할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째깍째깍 다가오는 주식시장의 몰락이 그 점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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