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얼굴을 벗어던지고 자본가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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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삼성디스플레이 13조1,000억 투자협약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삼성 공장에만 세 번째 방문이고, 이재용과의 만남은 총 아홉 번째다. 문재인과 재벌총수의 만남 횟수는 역대 정권을 추월해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상적인 모습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에게 ‘감사’의 인사를 공개적으로 건넨 것이다. 뇌물수수, 편법 증여, 증여세 포탈, 주가조작 등 이재용의 온갖 범죄 항목들도 ‘감사’의 마음을 가로막지 못했다. 13조 원 투자로 국민경제에 이바지하고,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감사의 이유였다.
이재용은 이에 “함께 나누고 같이 성장하자”는 대통령의 말씀을 따라 “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우애 좋은 형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 맞잡은 손을 통해 무엇이 건네졌을까? 문재인은 감사의 대가로 전폭적인 지원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7년간 4,000억의 정부 예산을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개발에 투입하겠다고 했다. 천안에는 디스플레이 혁신공정 테스트베드 시설을 설립하고, 삼성 하청기업들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원하며, 향후 4년간 2,000여 명의 디스플레이 인력을 배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계속 빨라지는 친자본 행보
재벌들과 사장들을 향한 문재인 정부의 구애작전은 최근 더 본격화하고 있다. 8월 2일 국무회의를 통해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을 2024년까지 5년 연장했다. 2016년 8월 시행된 원샷법으로 공급과잉 업종뿐만 아니라 신산업 진출 기업, 산업 위기지역 기업에게도 세제·자금 등 특례가 한시적으로 확대됐는데, 이걸 5년 더 연장시켜준 것이다.
일본 무역보복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소재, 부품, 장비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법”을 밀어붙이면서, 규제 대폭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화학 같은 위험한 분야에서 노동자의 안전이 걸린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노동시간 연장의 길도 터주었다.
10월 1일에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관계법 개악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뒤 국회에 넘겼다. 해고자·실업자는 사업장 단위 노조의 임원·대의원이 될 수 없고, 사업장 출입도 제한된다. 공무원, 교사의 쟁의권도 보장하지 않는다. 노조법은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고,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는 등 개악으로 가득 채워졌다.
급기야 10월 4일 문재인은 4대 경제단체장들을 초청해 비공식 오찬 간담회를 청와대에서 가졌다. 국내외의 심각한 경제상황에 대한 타개책을 모색한다는 이유였다. 이 자리에서 자본가들의 말을 경청한 뒤, 문재인은 경제장관회의에서 탄력근로제 개악을 주문하면서 입법을 추진하되 안 되면 시행령 변경 등을 통한 행정대책부터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자신이 추진했던 노동시간 단축마저 헌신짝처럼 버리겠다는 것이다. 삼성공장 방문 불과 5일 후인 10월 15일, 문재인은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해 마찬가지로 ‘감사’와 함께, ‘대폭 지원’을 약속했다.
민주당의 행보도 똑같다. 9월 25일 민주당은 전경련과 회동했다. 이 회동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으로 잡힌 민주당과 전경련의 회동이었다. 회동에서는 예상했던 레퍼토리가 상영됐다. 전경련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를 거론하면서, ”기업이 다시 뛸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주문했다.
그들이 주문한 여건 조성의 의미는 간단하다. 기업들에 대한 온갖 규제 조항을 없애고 노동자들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오가게 된 것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 전경련과 날카로운 각을 세웠던 출범 초기 민주당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들이 자본가들의 요구에 기꺼이 순응할 자세가 돼 있다는 전경련의 판단을 반영하는 것이다.
급기야 민주당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로 넘겨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노동관계법”을 10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을 자유한국당과 전격 합의했다. ILO 협약 비준은 받을 생각이 없고, 탄력근로제 적용 기간도 1년으로 연장하자고 벼르고 있는 자유한국당과의 협상 과정에서 이 개악안은 또 얼마나 더 개악될 것인가? 게다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의 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이다.
이 모든 것은 명확히 하나의 그림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민주당이 아주 빠르게 자본가계급의 품에 안기고 있고, 노동자 민중에게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는 사실!
초기의 약속은 어디로?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삼성 디스플레이를 포함해서 모든 기업의 투자 결정은 오직 기업 자체의 성장과 수입 전망에 따라 하는 것이지, 대통령이나 정부가 사정한다고 투자하고, 투자하지 말라고 투자 안 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덧붙여 심 의원은 “그렇게 하면, 기업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투자하면서도 정부의 특혜를 바라게 된다”고 비판했다. 참으로 정당한 비판이다.
삼성 이재용이 아산 디스플레이 공장에 13조 원을 쏟아 부어 여기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더라도, 그것은 자기 이익을 위한 투자의 부산물일 뿐 거꾸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투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일자리를 위해 투자했다면, 재벌의 사내유보금이 어떻게 천문학적 규모로 쌓여 있고 계속 빠르게 늘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이 정부가 하고 있는 짓은 이런 것이다. 재벌의 투자에 대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인사를 보내고,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면서 칭송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투자금의 일부를 정부재원으로 보조하고, 갖가지 지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과 민주당이 선거캠페인 과정과 집권 초기에 보였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당시에 문재인 정부는 “재벌 지원”이나 “재벌에 대한 감사” 따위는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그들이 거론했던 것은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필두로 전반적인 정규직화 정책 확대”,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노동시간 대폭 단축”, “재벌에 대한 원칙적인 처벌과 공정한 법집행” 등이었다. 재벌들이 떨고 있다고 경제신문들이 너스레까지 떨 정도였다.
180도 달라진 오늘의 모습은 무엇을 보여주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가고 있는 길을 단순히 ‘배신’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그 배후에는 어떤 논리가 도사리고 있을까?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심상정 의원의 비판은 정당하지만, 단지 현상만 건드리고 있을 뿐 그러한 행보의 뿌리를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를 그대로 놔둔 채 반노동자적인 결과만을 완화하려 하는 개량주의 세력의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민주당과 문재인의 공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본주의 발전과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함께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통해, 한편으로 자본가계급의 지지를 끌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지지까지 끌어내겠다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들은 그것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믿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영구화하면서도 계급투쟁을 지워버리겠다는 ‘자본가계급의 이상’을 반영한다. 이렇게만 된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영원히 안전할 것이고, 노동자혁명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관리자, 보호자의 심리를 반영한다.
이러한 ‘자본가계급의 이상’은 자본가계급의 일부와 중간계급의 상당수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심지어는 후진적인 노동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도 한다. 계급투쟁이 정점으로 치달아 이런 ‘이상적 목표’가 완전히 무용하다는 사실이 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점 이전에는 이런 입장을 내건 자본가정당은 상당한 지분을 갖게 된다. 게다가 이것은 자본가계급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상’을 내걸게 됨으로써 계급투쟁 격화를 차단하고, 특히 노동자계급이 자본가정당들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립적이고 전투적인 노동자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자본가정당은 계급전쟁을 지우고 그 자리에 평화의 나무를 심겠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사람을 지도자로 내세움으로써 노동자대중을 더 효과적으로 기만하려 한다. 나아가서 이 자본가정당의 일부 지도자들에게는 이런 ‘이상적 목표’가 경건한 ‘확신’으로 자리잡는다. 이들은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불평등이 완화하고, 노동자들이 더 이상 비정규직이나 실업자로 신음하지 않으며, 온갖 사회복지 제도를 통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정말로 희망한다. 우습게도 이들은 자신들이 노동자의 ‘벗’이라고까지 생각한다. 때때로 이런 확신으로 무장한 자들은 ‘을지로위원회’ 같은 것을 꾸려서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전제조건이 있다. 이런 이상은 반드시 자본주의 사회를 통해서 실현해야 하고, 게다가 이 자본주의 사회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 한마디로 노동자의 눈물만이 아니라 자본가의 이윤욕을 함께 대변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줄어들고, 계급투쟁이 약화되는 평화로운 자본주의”가 그들의 목표인 것이다. 이런 목표는 “소득 주도의 자본주의 성장론”이라는 하나의 이상적인 경제정책으로도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이상, 목표는 과연 실현가능한 것일까?
정면으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
어떤 정치가가 ‘하겠다는 것’과 실제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이건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의 소위 ‘노동자의 벗’이 되겠다는 자들에게 딱 들어맞는다. ‘자본가의 벗’이 ‘노동자의 벗’이 되는 길은 현실에서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생존과 자본주의 번영은 정면으로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충돌은 불가피하다. 둘 중 하나는 박살나야 한다. 자본주의의 번영이란 자본가계급의 이윤이 크게 증대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 자본가들이 투자율을 높이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자본가계급의 이윤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잔인한 착취, 즉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유린하고 두 계급 사이의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통해서만 증대한다. 물론 아주 일시적으로는 자본주의 번영이 눈부시게 진행돼, 투자율이 높아지고 이것이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불러올 수는 있다. 이 시기가 노동자계급에게도 그나마 가장 좋은 시기다. 일자리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불평등은 더욱 커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호시절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가 되면 자본가계급의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하고 이것은 결국 투자율을 낮춰 불황, 공황을 불러온다. 게다가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으므로, 오늘날 자본주의 번영이란 장마철에 구름 사이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햇볕처럼 극히 드문 일이다. 불황이 만성화되면서 착취도 증대 즉 일상적인 해고,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대, 노동강도 증대가 자본주의의 공식이 됐다.
게다가 자본주의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자본주의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 위에 군림하며, 통제에 나선다. 가령 최저임금 인상에 맞서서 자본가계급은 해고와 변형근로, 구조조정으로 응답한다. 일자리를 손에 쥐고 있는 자들은 바로 자본가계급이므로 그 효과는 즉각 발휘되기 시작한다. 경제의 고삐를 쥐고 있는 자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자본가계급임이 드러난다.
자본가계급의 통제 시도 앞에서 이 정부는 허둥지둥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자본가계급의 반격에 맞서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해고 및 변형근로 금지, 기업 법인세 대폭 인상으로 영세업체 노동자 최저임금 보조’ 등 더욱 강력한 조치로 자본가계급의 반항을 제압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자본가계급이 쥐고 있는 경제권력을 과감히 침식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수중으로 경제권력을 이양하는 대담한 시도에 나설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검찰이 휘두르는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대담하게 맞설 용기를 내는 청와대, 민주당이지만, 자본가계급이 독점하고 있는 경제권력에 맞설 용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신성불가침의 자본주의 사적 소유권을 보호하는 것, 즉 자본주의 경제를 보호하고 번영시키는 것을 지고의 사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와 민주당은 경제권력에 굴복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포기하겠다! 노동시간 단축도 포기하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겠다! 자본가들의 고충(?)을 십분 헤아리지 못했음을 반성하겠다! 온갖 규제를 풀고, 노조법을 개악하겠다! 그러니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자본가들이여, 제발 투자를 확대해달라! 살려달라!” 바로 이것이 지금 문재인과 민주당의 행보를 정확히 보여주는 그림이다.
다가오는 폭풍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내건 ‘소득 주도의 자본주의 성장론’은 노동자계급의 절대적 소득 증대와 자본주의 번영이 잠시 공존했던 과거 호시절을 회상하고, 그걸 다시 불러오려는 헛된 망상을 정책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호시절은 영원히 지나갔고,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진실이 지금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세계적 경제 위축은 확대되고 있고, 이것은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도 결코 비껴갈 수 없는 위기 말이다. 9월 10일에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OECD 중간 경제전망(OECD Interim Economic Outlook)>에 따르면 2019년, 2020년 세계경제 성장률 예측치는 불과 4개월 전인 5월 전망 대비 2019년 3.2%→2.9%로, 2020년 3.4%→3%로 하향조정됐다.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엔진 역할을 해왔던 중국의 경우에도 2020년 성장률은 5.7%까지 하락할 전망을 내놨다. 중국 정부가 반드시 지키겠다고 공언한 6% 성장률도 이제 붕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성장전망도 2019년 2.4%→2.1%, 2020년은 2.5%→2.3%로 하향조정됐다. 이것은 OECD 국가 평균성장률 예측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OECD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의 미래 예측이 항상 낙관적인 장밋빛 전망 수치를 보여주고, 실제 성장률 수치는 그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나곤 했다는 점에서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이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라는 이상을 실현하겠다는 한국의 자본주의 수호자들에게는 천둥과도 같은 것이다. 경제위기라는 폭풍우를 예고하는 천둥 말이다. 이 천둥이 보여주는 미래 앞에서 그들은 자본주의 수호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그들의 정책’은 하나의 기본 전제를 깔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의 안정과 번영이다. 그들에게 자본주의 체제는 유일한 경제체제이고, 그들의 이상이 실현되는 터전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흔들려 성장률이 곤두박질치거나, 심지어는 IMF 사태처럼 급격히 주저앉는다면 모든 계획은 파산한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치솟는 실업률, 임금삭감, 비정규직 확대도 불을 보듯 뻔하다. 노동자를 위해서라도, 추락하는 자본주의 성장률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지상명령이 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본주의 성장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움직인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구조조정을 손쉽게 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다른 말로 노동자에 대한 착취 강화를 보장하고 있다. 그 뒷면은 무엇일까? 바로 노동조합의 저항권을 봉쇄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조법 개악으로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에 정부의 경제정책이 가세한다.
이자율 인하
<OECD 중간 경제전망 보고서>가 세계경제의 경기하강 위험에 대한 대응책으로 OECD 국가들에게 제안하고 있는 핵심 정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자율 인하 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 재정 확대 정책이다. 문제는 OECD가 회원국들에게 권고하는, 경기하강 저지를 위한 핵심 정책 두 가지 모두 약발이 다했다는 것이다. 이자율 인하 정책은 마이너스 금리 국가까지 등장할 정도의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내리고자 해도 내릴 금리가 없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이번 하반기 인하로 금리가 연 1.25%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이것도 모자라 내년 상반기까지 추가로 0.5% 인하가 예고되고 있다. 그 카드까지 다 써버리면 마이너스 금리 문 앞에 서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이자율 인하는 시중에 돈이 넘치게 만드는데, 이 돈이 아무리 시장에 풀려도 기업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윤율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본가계급이 투자율을 높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자본가들, 가령 삼성 이재용이 13조 원을 투자한다고 하니, 문재인이 버선발로 나가서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판국이다.
이자율 인하로 시장에 쏟아 부은 돈이 기업들의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어디로 흘러들어가는 것일까? 주식시장이 거의 패닉 상태에 몰려 있는 조건에서, 그것은 부동산 투자로 흘러들어가 전국을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 이것은 거대한 사회적 저항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이 칠레 노동자 민중이 저항에 나서는 트리거가 됐듯이, 유동성 확대에 따라서 수도권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폭탄의 트리거가 될 개연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이러한 후폭풍을 염려해,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인상을 억제하는 갖가지 조치를 하루가 멀다 하고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부풀면서, 부동산 폭등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반대 상황도 트리거가 될 수 있다. 이미 엄청나게 커져버린 부동산 거품이 정부 규제 정책 및 경기하강과 맞물리면서 터져버리는 것도 재앙이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기회복이라는 단비를 만나지 않는 한 이런 위험은 계속 커져만 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이자율을 인하하면서 위태로운 도박을 계속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갈수록, 이 정부는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자본가계급에게 더 절실하게 매달릴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기꺼이 해줄 용의를 보일 것이다.
정부재정 확장 정책
OECD가 회원국들에게 제안하는 가장 중요한 조치는 바로 정부재정 투입 정책, 즉 정부재정 확장 정책이다. OECD는 긴축재정을 풀고, 전면적인 확장 정책에 나서 다가오는 세계경제 하강의 위험에 대비하자고 호소한다. 그런데 이미 너무 많이 실탄을 써버렸다. OECD 국가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이미 110%를 상회하고 있다. 그 이상 정부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국가파산의 위험을 증폭하는 것이다.
그 결과 OECD는 회원국들에게 정부재정 확장 정책을 권고하면서도, 이미 너무 높아진 국가채무비율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OECD 보고서는 덧붙인다. 한국과 영국 정도가 이런 확장정책을 수행할 여력이 있다고. 실제로 한국의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17년 기준 42.5% 정도에 아직 머물러 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카드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재정 확장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23년까지 50%에 육박하게 높아지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정부 예산안은 올해 대비 9.8% 인상 규모로 짜여졌다. 이 정부재정 확장 정책은 누구를 향하는 것일까? 노동자 민중의 사회복지 예산을 증대하는 것이 중심이 아니다. 바로 자본가들의 투자를 촉진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우선 SOC(사회간접자본) 부문 예산이 대폭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에 SOC 부문 예산을 늘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경기부양을 이유로 건설자본에게 퍼주는 선심성 예산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의사이자, 정부재정을 비정규직 정규직화 예산이나 사회복지 예산에 주로 배정하겠다는 의사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SOC 예산은 지난 2015년 24조 4,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3% 증액 편성된 이후,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지속적으로 감축됐다.
하지만 정부가 8월 29일 발표한 2020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SOC 부문 예산은 22조3,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12.9%(2조6,000억 원) 증가했다. 이것은 4대강 사업으로 SOC 부문 예산이 대폭 늘었던 2009년(26.0%) 이후 가장 높은 증가폭이다. 게다가 SOC 예산 규모는 앞으로 수년 동안 눈덩이처럼 계속 커질 예정이다. 수많은 도로, 철도, 항만 사업이 잡혀 있고, 계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에너지 분야 예산이 가장 크게 증가했다. 무려 27.5%나 늘었는데, 이 예산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대기업들이다. 10월 10일 문재인이 삼성 아산공장을 방문해 약속한 삼성 디스플레이 지원예산, 15일 현대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해 약속한 미래차 관련 지원예산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사회복지 예산은 늘기는 했다. 보건, 복지, 노동 예산은 12.8%, 일자리 관련 예산은 21.3% 증가했다. 하지만 기업지원 예산 증가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증가폭이 크게 하락했다. 게다가 사회복지비로 잡혀 있지만, 실제로는 자본가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돈도 염두에 둬야 한다. 가령 광주형 일자리, 군산형 일자리 등에 투입되는 정부 재정지원은 일자리 관련 예산으로 편성된다. 그러나 그 예산의 혜택을 실제로 보는 사람은 바로 자본가들이다. 사실은 기업지원 예산에 편성돼 있어야 할 돈이 일자리 관련 예산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자본가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지만 사회복지 예산으로 잡혀 있는 것이 부지기수일 뿐만 아니라, 이 정도 사회복지 부문 예산확대는 “언 발에 오줌누기” 밖에 되지 않아 노동자 민중에게는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미래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만일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OECD 평균인 110%에 달했다면, 그래서 이 정도의 정부재정 확장조치조차 수행할 수 없었다면 한국은 지금 어떤 상태에 있을까?” 아마도 최근 칠레 사태처럼, 거대한 사회적 위기가 눈앞에 성큼 다가왔을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정부재정의 여유(물론 타 국가 대비 상대적인 여유!)는 전적으로 한국 자본가정부가 노동자 민중을 악랄하게 수탈해왔음을 적나라하게 증명하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일자리, 사회복지 예산은 OECD 국가들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폭 인상됐음에도,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 복지비 지출 비율은 여전히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정부가 악랄하게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방치한 결과, 한국 자본가정부는 소위 재정건전성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왔던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압력에 의해 정부 재정의 일부를 사회복지비로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코끼리에게 비스켓 던져주는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민간부문의 착취도 증대에 따라 확대하는 실업과 저임금을 상쇄하기도 벅찬 수준이다. 일자리 예산, 사회복지비 예산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친기업 예산을 대폭 늘리고 있고, 그 비율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그것은 결국 일자리 예산, 사회복지비 예산 증가 비율 대폭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재집권을 위해 노동자들을 호도해야만 한다는 절실한 필요 때문에 일자리, 사회복지비 예산 규모를 어느 수준에서 계속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한국 정부는 재정여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가? 높아지는 국가채무비율은 대외신용도 추락, 해외투자자본 유출, 국채시장 불안정을 비롯해 새로운 위험요소를 계속 잉태할 것이다.
나아가서 언젠가 타 OECD 국가들처럼 높은 수준의 정부재정적자 비율에 도달하면, 재정확대 정책은 막을 내리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긴축재정이 유일한 선택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스에서 경험했듯이 긴축재정은 공공부문의 대량해고와 사회복지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뜻할 것이다. 긴축재정 대신 확장재정을 선택하는 것이 결코 장기적,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자본주의가 세계화된 상황에서 한국의 상대적으로 낮은 정부재정 적자비율은 세계적 자본주의 위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정부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지켜낼 수 있는 길은 아주 분명하게 존재한다. 바로 노동자계급을 쥐어짜서 두둑해진 자본가계급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다. 법인세를 대폭 인상하고, 부유세를 신설 확대해서 자본가계급의 이윤을 환수하는 것이다. 이것과 함께 자본가 퍼주기 예산을 없애 이렇게 확보된 정부재원으로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지켜내는 것이다. 나아가서 자본가들의 이윤논리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생존논리가 사회적 자원의 투자와 생산의 목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전망은 자본가계급과의 정면 대결을 뜻한다. 자본가계급은 투자를 사보타지하고 대량해고를 자행하면서 경제권력을 휘두르며 저항할 것이다. 이것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경제권력을 자본가계급의 수중에서 빼앗아서, 노동자 민중의 손에 쥐어줘야 한다.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운영하며 소유하는 주체가 노동자계급 즉 사회가 돼야 하는 것이다. 바로 사회주의를 뜻한다.
두 가지 길
결국 두 가지 길, 즉 자본가계급의 길과 노동자계급의 길, 자본가정부의 길과 노동자정부의 길, 자본주의의 길과 사회주의의 길이 충돌한다. 자본가계급의 주류는 최저임금을 낮추고, 노동시간을 증대시키며, 탄력근로제를 확대하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없애는 것을 원한다. 그들은 노동자운동과 한 판 붙기를 겁내지 않는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노선을 적극 지지한다.
자본가계급의 일부 분파의 생각은 조금은 다르다. 자본주의가 낳는 더러운 결과 없는 자본주의, 노동자계급의 고통을 완화하는 자본주의,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저항과 계급투쟁을 약화하는 평화롭고 안전한 자본주의를 그들은 갈구한다. 하지만 이들의 발밑은 계속 허물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는 날로 성장하고 있고, 이를 반영해 자본가 정부가 쥐고 있는 위기 완화 수단이 갈수록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수줍은 자본가정부’에서, ‘노골적인 자본가정부’로 빠르게 변모하며, 결국 스스로 ‘신자유주의 정부’가 된다. 두 분파 모두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수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고, 이 체제의 안전과 번영을 지상명령으로 받들어 모시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같은 개량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반영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혁명 없이 개량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즉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개량주의자들은 민주당과 똑같은 목표를 추구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정치 영역에서 민주당의 왼쪽 날개로 2중대 역할을 하는 그들은, 경제 영역에서도 민주당의 왼쪽 날개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들 또한 자본주의 경제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만이 일관되게 자본주의 착취제도에 맞서 투쟁할 수 있다. 일자리와 임금, 안정된 삶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 이 분노는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가 노골화함에 따라 더욱 커질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이 확장하고, 그 속에서 노동자 의식과 자신감이 깨어날수록 노동자계급은 자본가정부를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면서 자본가계급과 맞서는 노동자정부로 대체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자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계급투쟁이 전면화하고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경제권력을 해체해 사회적 공동경제로 대체하는 위대한 사회주의 전망을 단호하게 붙잡게 될 것이다. 톨게이트 노동자 직접고용 쟁취투쟁, 노동법 개악 분쇄를 내건 단호한 총파업투쟁 등 모든 결사적인 노동자투쟁은 그것을 향한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냐 아니면 자본주의냐? 오늘날 이것은 이 시대의 가장 결정적 문제다!” 노동자계급의 생존과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단결하는 노동자들은 그 결론을 향해 한 발씩 전진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내건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는 그런 자본주의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단호한 계급전투만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지켜줄 수 있다는 점을 매일 생생하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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