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을 잃은 자본주의, 물가 인상에 맞서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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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인상이 불러온 정치적 위기
전 세계적 물가 폭등 양상이 심상찮다.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시중에 풀린 막대한 통화량에다, 최근 공급망 붕괴까지 겹치며 본격화된 인플레이션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한층 심해지는 모양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4월 26일 발표한 ‘상품시장전망 보고서’는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은 2022년 50% 이상 오른 뒤 2024년쯤 완화될 것”이라 밝혔다. 에너지 가격뿐만 아니라 식량 가격도 폭등 중이다. 2020년 4월 이후 2년 간 전 세계 식품 가격은 이미 84% 상승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 세계 생산의 30%를 차지하는 밀 가격은 올해 작년보다 40% 넘게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물가 인상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삭감과 동의어다. 100만 원의 임금을 받아 생필품 100단위를 살 수 있던 노동자가 물가 인상으로 80단위의 생필품밖에 구입할 수 없다면, 이는 임금이 100만 원에서 80만 원으로 삭감된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는 물가 인상으로 생계를 잇기 어려워진 노동자 민중의 거센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
물가 인상이 촉발한 민중항쟁은 2011년 ‘아랍의 봄’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도 아랍 여러 나라에서는 식료품 가격 폭등으로 거센 저항이 벌어지고 독재자들이 권좌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부패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스리랑카의 3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19% 상승하고, 여기에 만성적인 식량·에너지 부족 사태까지 겹치자 대규모 투쟁이 일어난 것이다.
남미 지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페루에서는 유가와 식료품 가격 등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거세게 벌어졌다. 이에 페루 정부가 지난 5일 수도 리마와 주요 도시에 통행금지령과 비상조치를 기습 발령했다가 거센 항의에 부딪히자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취소한 일도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은 전년 대비 55.1%, 전월 대비 6.7%로 기록적인 수준이다. 아르헨티나는 빈곤층 비율이 37%에 이른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물가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선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는 현수막을 들고 일자리, 식량, 정부 지원금 확대를 요구했다.
현재 전 세계적 물가 인상은 우선적으로 개발도상국에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개도국일수록 전체 소비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데, 이들 나라는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값싼 식량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러시아 등의 비료 수출 감소도 식량 가격을 인상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들 나라에 비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도 물가 인상이 이제 발등의 불이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은 전년 동기 대비 4.1%를 기록했으며, 이는 2011년 12월 이후 10년 3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인한 공업제품·석유류 가격 인상에 외식 등 서비스물가 상승이 물가를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대다수 노동자들은 점심값 부담으로 물가 인상을 체감하고 있다.
물가는 왜 오르고 있나?
첫째, 금융위기와 코로나19를 거치며 막대한 통화량이 시중에 풀렸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 연준이 양적완화로 퍼부은 돈은 약 3조7천억 달러(약 4,400조 원)에 이른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 규모다. 2017년 이후 완만한 테이퍼링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가 터지자 이번에는 10개월 만에 4조 달러(약 5,000조 원)가 추가로 투입됐다.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춰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작된 양적완화 대실험은 자본주의의 붕괴는 막았지만, 한계기업의 파산 → 생산수단의 저렴화 → 자본 이윤율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불황의 메커니즘을 중단시키면서 장기침체를 불러왔다. 그리고 각국에서 천문학적 규모로 풀린 돈은 생산적 투자 대신 자산 투기에 활용되면서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발생시키기도 했다. 이제 이 엄청난 규모의 통화량이 인플레이션마저 불러온 것이다.
현대화폐이론(MMT)에서는 지난 10년 간의 양적완화에도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에서 물가 인상률이 중앙은행의 목표치에 미달했다는 점을 들어 통화량 증대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 것처럼 주장한다. 이는 극히 일부만 진실이다. 자본 이윤율이 회복되지 않는 조건에서 양적완화로 투입된 현금이 생산적 투자에 지출되기보다는 주로 자산투기 수단으로 활용돼 인플레이션보다는 자산 가격 폭등만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주장하는 개념이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다. 기업에 돈을 풀어도 생산적 투자와 소비 지출로 이어지지 않으니, 진정한 헬리콥터 머니를 풀자는 것이다. 그러나 화폐 그 자체에는 어떠한 신비한 힘도 없다. 생산적 투자가 증대되지 않는 상황, 즉 한 나라의 부 자체가 성장하지 않는 상태에서, 천문학적 규모로 통화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결국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과 같이 코로나19 시기 소비자들 호주머니에 직접 현금을 꽂아준 방식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통화량이 늘었어도 자본 이윤율 하락으로 화폐유통속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통화량이 물가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빙 피셔의 화폐방정식 PT = MV에서, 통화량(M)이 늘어났어도 V(화폐유통속도)가 떨어져 물가(P)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란 것이다. (나머지 T는 거래량이다.) 그러나 양적완화로 시중에 풀린 통화량은 떨어진 화폐유통속도를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천문학적 규모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위 그래프는 미국에서 M1(협의의 통화량, 현금, 요구불예금 등 유동성이 높은 통화로 구성된다) 통화량과 화폐유통속도를 곱한 수치(M × V)의 증가율과, 도시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을 비교한 그래프다. 두 그래프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양적완화를 거치며 천문학적 규모로 시중에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의 첫 번째 원인이다.
둘째, 현시기 물가 인상의 또 다른 원인은 공급망 붕괴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일 년은 고사하고 몇 주 동안만이라도 노동을 중단한다면 그 어떤 국민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 각국에서 방역을 위해 봉쇄 정책을 취하면서 타격을 입은 국제 분업 생산체계는 여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계속되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문제가 대표적인 실례다. 또 팬데믹 기간 산유국에서는 유전을 비롯한 각종 설비 투자가 정체되고 기존 설비의 보수도 지연됐는데, 이 때문에 2022년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계획 목표치조차 달성이 지연될 정도다.
공급망 붕괴로 인한 물가 인상은 자본주의가 아니라도 불가피한 일이었을까? 물론 팬데믹은 생산과 유통에 일정한 차질을 발생시켰을 것이며, 아직 화폐가 유통되는 이상 이것은 화폐액의 변동으로 반영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권력이 운영하는 민주적 계획경제 체제였다면 재난에 대비한 비축분을 활용하고 불요불급한 산업 부문에 투입된 노동인구를 필수 부문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해당 부문의 생산성과 생산량을 높여 문제를 조기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이윤을 위한 생산, 자본가들의 무정부적 경쟁, 자원의 비효율적 낭비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한번 맞닥뜨린 생산 위기 앞에 주먹구구식 대응만을 내놓고 있다.
예컨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본가들은 떨어지는 이윤율을 만회하기 위해 적시 생산시스템(JIT, Just In Time)을 앞다퉈 도입한 적이 있다. 적시 생산시스템의 기본 개념은 낭비를 피하는 것으로, 매일 또는 매시간 요구되는 자재를 소량으로 조달해 재고를 최소화하고 창고 및 인력 비용을 줄이는 시스템이다. 그러다 공급 차질로 생산 타격을 입게 되자 이제 자본가들은 무분별한 원자재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물가를 끌어올리는 배경이 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낸 ‘코로나19가 공급망을 재편하는 방법’ 보고서에 따르면, “다양한 산업과 지역의 고위 경영진 약 70명을 설문조사(2021년 2분기 시행)한 결과 61%가 지난 1년간 중요 제품의 재고를 늘렸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한겨레>, ‘포스트 코로나 ‘탈세계화’…기업들 비용 더 들어도 위험 대비한다’, 2022. 1. 11.).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제국주의 간의 충돌은 현재의 공급망 교란 상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체제 위기가 심화되자 전쟁을 통해 타개책을 찾으려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이 전쟁은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에너지와 식량에 의존하는 많은 나라들에서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불러오게 될 것이다.
자본가들의 대응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에 물가 인상이 문재인 정부의 무분별한 돈 뿌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은 이를 “현금 살포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면서, “무리한 재정 지출과 이에 따른 유동성 증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은 서민의 삶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무분별하게 돈을 뿌렸다는 주장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 지난해 11월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각국의 코로나19 대응 추가 재정 지출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한국의 추가 재정 지출은 GDP 대비 6.4%에 불과했다. G20 중 선진국 10개국의 평균이 GDP 대비 14.6%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자랑했던 K-방역이 실상은 보건의료 노동자 갈아 넣기 + 자영업자 희생 강요에 지나지 않았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도 현실이 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윤석열 정부가 긴축 정책을 취할 것이란 점은 명백해 보인다. 문제는 자본가 정부의 긴축 정책은 철저하게 노동권에 대한 공격, 민중 생존권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로버츠가 지적한 대로 “긴축이 노리는 것은 단지 공공 부채와 정부 지출 그 자체를 줄이는 것만이 아니다. 자본의 수익성을 회복시키려는 것이다. … 자본 부문을 복원하기 위한 더 많은 신자유주의 정책, 바로 이것이 긴축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이다”(마이클 로버츠,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자본가 정부가 경제위기에서 자본가를 살리기 위해 막대하게 찍어낸 돈은 자본가들의 금융, 자산투기 밑천이 돼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제 다시 돈줄을 죄는 긴축 정책에서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고, 노동자 민중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 복지 지출마저도 삭감하려 들 것이다. 이처럼 자본가 정부는 확장정책이든 긴축정책이든, 언제나 국가재정을 자본가계급에게 봉사하는 도구로서, 철저하게 노동자 민중을 수탈하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물론 자본가들은 현재 긴축의 속도를 두고서는 머리를 싸매고 있다. 도저히 회복되지 않는 자본의 이윤율 앞에서 긴축이 또다시 광범위한 경기 후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즉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다. 인플레이션은 임금 인상 요구 등 광범위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자본가 정부로서는 긴축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코로나19 이후 부푼 자산 거품을 터트리게 될 것이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업의 약 20%를 차지하는 좀비기업(수익이 매우 낮아 대출 이자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기업)의 파산을 불러오게 된다. 이것이 자본가들이 고민하는 이유다. 예컨대 4월 19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국회 청문회에서 “단기적으론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하지만 장기적으론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우려가 있고 저성장, 저물가로 갈 수 있어서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물가 인상보다 경제 침체가 더 문제라는 고민을 내비치기도 했다. 미국 역시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긴축 속도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인플레이션 정도는 어설프게 대응할 수준이 아니다. 2022년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인상률이 지난해 3월에 비해 8.5%나 상승한 현재, 자본가들은 우선 인플레이션부터 잡으려 들 것이 명백해 보인다. 당장 5월 3일 미 연준이 금리를 한 번에 0.5% 올리는 빅스텝이 유력하다는 예측이다.
물가 인상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자본가 정부가 물가 안정을 핑계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은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자본가 정부의 긴축 정책이란,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이윤율 회복을 위해 행해지는 노동권 공격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수출 주도형 경제에서는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손실을 수출품 가격 인상으로 전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삭감을 통해 비용 손실을 만회하고 이윤율을 높이려 들 것이다.
서두에 밝혔듯이, 노동자들에게 물가 인상이란 실질임금 삭감과 동의어다. 물가 인상에 맞서 노동자들은 광범위한 임금 인상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벌어질 때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임금 인상’이라고도 볼 수 없다. 100단위의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100만 원의 임금을 받던 노동자가, 이제 물가 인상 때문에 100단위의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120만 원의 임금을 받겠다 해봤자 이는 자기 노동력의 가치를 종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송, 운송 분야 노동자들의 운임료 인상 요구를 ‘물가 운송료 연동제’와 같은 요구로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임금 인상이 물가 인상을 촉발할 것이므로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라는 자본가들의 거짓 선전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설령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것이 물가 인상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임금, 가격, 이윤>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으로 생필품 수요가 증가하면, 생필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상품 가격을 상승시킴으로써 상승된 임금을 보상받는다. 다른 한편 생필품을 생산하지 않는 자본가들의 경우, 수요 증가가 없으므로 자신의 상품 가격을 올릴 수 없어 임금이 오르면 이윤율이 하락하게 된다. 그런데 자본과 노동은 수익이 더 적은 부문에서 더 큰 부문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이때 생필품 생산 부문으로의 공급 증가가 다시 생필품 가격을 끌어내리게 된다. 결론적으로 “임금률의 전반적 상승은 시장 가격을 일시적으로 교란한 뒤 이윤율의 전반적 하락을 초래할 뿐, 상품 가격을 영속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2015년 발표된 강승복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의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논문은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더라도 매우 미미한 수준임을 밝혔다.)
또한 물가 인상에 맞선 투쟁에서 전체 노동자, 특히 밑바닥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물가 안정을 핑계로 노동권을 공격하면서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를 갈라치려 들 것이 뻔하다. 자본가들은 중소영세사업체, 하청 바지업체의 지불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물가 폭등에 따른 고통을 밑바닥 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한다고 우겨댈 것이다. 물론 그들은 지불 능력이 부족하다. 하지만 1천조 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자산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는 독점자본의 지불 능력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해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에 이어, 얼마 전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 자본가들의 노동법을 집행하는 중앙노동위원회조차 하청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이 원청 자본가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청 자본가를 상대로 한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더욱 광범위하게 벌어져야 하며, 조직 노동자운동은 이들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초기업별 단체교섭 제도조차 없는 나라에서 조직 노동자 운동이 자신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깎는다 해서 이것이 밑바닥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 리는 만무하다. 조직 노동자 운동은 실체도 불분명한 사회연대임금 전략을 떠드는 데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작은 사업장,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 노동권 보장 요구에 헌신적으로 연대하고 동참함으로써 자신의 계급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전면 적용하라, 최저임금 적용 예외를 폐지하고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대폭 인상하라는 요구를 조직 노동자 운동이 내걸어야 한다. 물가 인상에 맞선 노동자투쟁에서도 계급 단결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회의 혁명적 재편을 향한 투쟁으로 나아가기
장기불황, 뒤이은 인플레이션의 발생 등 오늘날 답을 잃어버린 자본주의 앞에 자본가들이 보이는 무능력은 예정된 일이다. 그들은 계급적 이해로 인해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 즉 현재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이윤율 하락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분한 이윤을 기대하기 힘든 상태에서 자본가들은 구태여 생산적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만 격심해지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실시했던 양적완화 대실험은 이제 인플레이션이라는 사회적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 모든 난맥을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사실 간명하다. 오늘날 고도로 발전된 생산력은, 자본주의가 사회 구성원의 분업에 기반한 사회적 생산체제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투자 결정, 자원의 배분 등 모든 경제적 의사결정은 단지 이윤 획득이 관심인 소수 자본가들이 독점한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다. 따라서 민주적 노동자권력이 사회의 운영권을 틀어쥐고 사회적 필요를 위한 생산 체제를 만들어,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것이 진짜 해결책이다.
그러나 노동자권력은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권력은 자본의 공격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 속에서 그 혁명적 탄생을 준비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는 “임금을 인상시키기 위한 노동자의 노력은 100 가운데 99가 주어진 노동의 가치를 유지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이 때문에 “자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만약 자본과의 일상적 충돌에서 비겁하게 물러난다면, 노동자들은 틀림없이 더 커다란 운동을 주도할 자격을 스스로에게서 박탈하는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마르크스, <임금, 가격, 이윤>). 쇠퇴하는 자본주의에서 임금 인상을 위한 투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은 바로 이런 관점에 입각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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