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I 2022년은 기후운동의 새로운 단계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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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Must Mark a New Stage for the Climate Movement
샘 칼리너·엠마 리 │ 2022년 1월 11일
2021년 9월 24일 금요일,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지구 곳곳에서 세계기후파업을 재현하기 위해 모였을 때 이 기사의 필자 중 한 명은 ‘선라이즈 운동(Sunrise Movement)’, ‘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 같은 단체들이 이끄는 맨해튼 행진에 참여하고 있었다. 시위의 규모 면에서는 인상적이었지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체제 문제는 토론되지 않았다. 또 바이든은 전혀 비판되지 않았고 구호에서조차 언급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인명 손실을 초래한 기록적 재난이 있었던 한 해(2021년)가 지난 지금, 여기에 책임이 있는 자들의 이름을 밝히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세계 거대 기업들, 그리고 워싱턴에 있는 거대 기업의 대변자들이 그들이다. 2021년 미국 도처에서 발생한 기후 재난의 다수는 노동자계급 거주지의 사회기반시설 부족 때문에 더 악화됐다. 이는 민영화된 전력망의 실패를 부각시킨 텍사스의 2월 혹한,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은 여름 폭염에서 드러난다. 캘리포니아 산불은 다시 기록을 갱신했으며, 열대 폭풍이 뉴욕시에 홍수를 일으켜 아파트 지하층에 살던 주민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런 재난들은 단지 미국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다. 브라질은 수십 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에 맞닥뜨렸으며, 거대 산불이 그리스와 터키를 휩쓸었다. 홍수가 독일을 파괴했으며, 마다가스카르에서는 가뭄으로 40만 명의 주민이 기아 위기에 처했다.
2021년 7월은 지구에서 가장 더웠던 달로 기록됐다. 국내난민감시센터(IDMC, Internal Displacement Monitoring Center)에 따르면, 2020년 3,070만 명이 기후 재난으로 난민이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남아시아,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사람들이다. 7월에 발표된 한 연구는 비정상적인 더위와 추위로 한 해 5백만 명 이상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숫자에는 홍수, 허리케인, 폭풍 등의 재앙과 관련된 추가 사망자 수는 포함돼 있지 않은데도 그렇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서는 기후위기의 긴급성을 냉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긴급성은 기후변화 그 자체가 세계적이듯이, 세계적 차원의 기후운동을 요구한다. 이 운동이 기후위기에 맞서 투쟁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운동의 가장 혁명적인 부문들로부터 나오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구할 수 없다. 자본주의가 위기의 근원이다
노동자계급이 반복되는 재난을 겨우 견디고 있는 동안, 자본가들과 그들을 대변하는 세계의 지도자들은 위기를 조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이든은 기후변화에 따른 최악의 결과를 완화하기에는 전혀 불충분한 계획으로 대통령직을 시작했으며, 그 노력조차 한 해가 지나는 동안 더 나빠지기만 했다. 2021년 중반, 캘리포니아 산불이 새로운 기록을 세운 지 고작 한 달이 지났을 때 바이든은 더 많은 원유 생산을 장려했다. 사실 바이든은 대통령 임기 1년 만에 트럼프가 임기 마지막 3년 동안 했던 것보다 더 많이 원유와 가스 시추 임대를 승인했다.
기후운동은 자본주의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이 그들 자국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이 점은 10월에 열린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증명됐다. COP26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열린 가장 큰 회의라고 광고됐지만, 실제로는 지구의 전면적 파괴를 가능케 한 세계 지도자들을 홍보하는 가면무도회에 불과했다. 많은 이들이 COP26을 ‘COP-out(약속을 배신하다 - 옮긴이) 26’이라고 조롱했던 것이 정당하게도, 그 회의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파괴적 정책을 그린워싱(greenwash, 친환경 정책으로 위장하는 것 – 옮긴이)할 기회를 얻었다.
100명이 넘는 세계 지도자들과 수만 명의 대표단이 COP26에 참여했다. 그들 중에는 500명이 넘는 화석연료 로비스트들도 있었다. ‘글로벌위트니스(Global Witness, 국제환경인권단체 – 옮긴이)’에 따르면, 화석연료 로비스트들은 “지난 20년 간 기후변화로 가장 나쁜 영향을 받았던 여덟 개 나라의 대표단 수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반면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으며 지구의 변함없는 보호자들인 원주민들은 거대한 진입 장벽에 마주해야 했다. 이미 불충분한 ‘글래스고 기후합의(Glasgow Climate Pact)’의 결의안이 막판에 석탄 발전과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 폐지”에서 “단계적 감축”으로 완화한 것도 놀랍지 않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체결된 합의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불충분한 기후 보호 계획을 2022년 말까지 강화한다는 요구사항의 준수는 전적으로 자발성에 맡겨졌다.
COP26 같은 회의는 그린워싱 서커스가 되었다. 기후를 둘러싼 담론이 정부와 기업들에 더 폭넓게 수용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교토의정서 이후 부과된 협정과 조치들은 어느 때보다도 관대하고 기업 친화적이다. 이것이 (온실가스 – 옮긴이)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는 이유이다.
무엇보다도 COP26은 자본주의가 기후위기의 해결을 거부했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렇게 하면 자본주의 체제를 움직이는 이윤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운동의 한계
새해(2022년)는 콜로라도 전역을 휩쓸며 수백 채의 주택을 파괴한 거대 산불로 시작됐다. 이는 재난이 가득했던 2021년 한 해가 특이한 게 아니며 우리가 살아가는 새로운 세계의 한 가지 예시에 불과하다는 걸 명백히 보여준다. 기후위기의 상태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지도자들은 기후변화로 가장 고통받는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억압받는 공동체를 위해 결코 진지한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이는 기후운동이 대응방식을 바꿔 (기후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프트보이스>는 전 세계의 청년운동을 기후운동 전위의 핵심적인 부문으로 보고 있다. 젊은 기후 활동가들은 기후변화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위기의 본질에 대한 토론을 진전시킬 수 있는 대중적 동원을 조직할 수 있다는 점을 수차례 보여주었다. 2020년 ‘인종 정의 시위(racial justice protests)’에서 ‘환경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 오염된 지역일수록 흑인 혹은 남미 이주민의 비율이 높은 현상으로, 이를 새로운 유형의 인종차별로 인식하는 것이다 – 옮긴이)’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던 것처럼, 젊은 전위들은 억압 체계들이 공히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서로 맞물려 있다는 점에 좀 더 분명한 인식을 보여줬다.
청년 기후운동의 영향은 기후변화에 대한 청년들의 자각에서도 확인된다. 2020년 적어도 72%의 젊은이들에게 기후변화는 주요 관심사였는데, 이는 2015년의 58%와 비교되는 수치다. 이는 2018년 15세였던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학교 파업이 활기를 북돋웠던 대단히 가시적인 기후운동의 덕분이다. 2019년 세계기후파업은 150개국 4,500개 지역에 걸쳐 세계적으로 400만~700만 명이 참여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가장 큰 규모의 기후 시위다. 그 동원 규모는 2020년 미국 한 곳에서 벌어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의 1,500만~2,600만 명보다는 한참 적다. 그럼에도 코로나 팬데믹이 닥쳐오기 전까지는 기후운동이 엄청난 추진력을 얻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기후운동을 구성하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툰베리를 비롯해 기후 의제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는 청년 활동가들 다수는 이 문제를 자원의 최대 추출과 에너지 사용의 지속적인 증가에 기반한 체제의 결과로 보는 대신, 세계 지도자들의 무대책(inaction) 중 하나로 규정하려 한다.
한편 기후 의제와 관련해 청년층을 동원하는 가장 큰 단체 중 하나인 ‘선라이즈 운동(Sunrise Movement)’은 처음에 바이든의 기후 정책에 F 학점을 줬으면서도 바이든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지지했다. 선라이즈와 다른 기후 단체들의 지지 덕택에 바이든은 잘 알려진 자신의 환경 파괴 기록을 은폐할 수 있었다.
취임한 바이든은 이제 트럼프가 했던 최악의 기후 정책들 중 일부를 지속하고 있다. 바이든이 특별히 두 얼굴을 가진 정치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의 대표로서 미국 대통령은 언제나 자본에 가장 이익이 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계급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기후 정책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새롭게 정치화된 기후 활동가들이 민주당에 협력하는 같은 실수를 저지를 위험에 빠질 것이고, 그저 배신당하며, 소진되고, 허무주의자가 될 것이다.
청년운동의 한계는 이들 단체가 내세우는 요구들의 형태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에서 기후 단체들과 좌파 개량주의 경향들은 여전히 그린뉴딜을 미국 좌파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야심적인 계획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린뉴딜에는 좌파가 현명하게 수용해야 할 개혁 조치들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겠지만, 그린뉴딜은 기후운동이 그 투쟁에 모든 자원을 쏟아 넣을 만큼 야심적인 게 못 된다.
사실 기후위기에 맞선 투쟁의 주요 접근법으로 그린뉴딜을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왜냐면 그린뉴딜은 인류가 세계의 자원과 상호 작용하는 방식을 완전하게 재구조화하는 것보다는, 기업들의 “친환경화(go green)”를 장려하기 위해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이용하려 들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 정부가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 명확히 드러나면서, 좌파의 일부는 상호부조의 전략을 내세우며 지역적 차원에서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회주의자로서 사람들이 상호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만, 혁명적 에너지가 지역적 행동으로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레프트보이스>의 에즈라 브레인이 썼듯이, 상호부조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병증을 완화하려는 전략이다. 자본가계급의 권력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통해 유지되고 집행된다. 자본가 국가가 기후위기를 부채질하는 결정을 내리므로, 사회주의자는 노동자계급 정당을 포함해 우리 자신의 조직을 건설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기본 과업이다. 오직 이를 통해서만 지속가능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생산하는 사회주의 체제에 도달할 수 있다.
청년운동이 드러내는 한계적인 야망과 전술 때문에 청년 기후 활동가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혁명가들은 청년운동 속에서 활동하면서 진정한 사회주의적 전망을 발전시켜야 한다. 명확한 계급 독립성, 국제주의, 위기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집중화된 계획경제의 필요성이 그것이다.
기후운동의 사회주의적 전망을 향해
기후운동과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실현 가능하다. 2021년 초 프랑스 정유 노동자들과 기후 활동가들은 다국적 에너지기업 토탈(Total)에 맞서 단결해 투쟁했다. 이 투쟁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킴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과 노동자계급의 이해가 어떻게 일치하는지를 보여줬다. 기후운동은 노동자투쟁에 연대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이를 증명해야만 한다. 기후 활동가들이 노동자투쟁에 연대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이 기후 투쟁에 동참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기후운동 및 노동자운동 내부의 사회주의자들은 기후운동과 노동자운동을 단결시키는 전망을 만들어가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지도자들이 기후운동 내에서 국제주의를 발전시키는 것도 꼭 필요하다. 우리의 요구는 간혹 국가적 차원에 머물지만, 이는 반드시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망 아래 기후위기에 맞선 사회주의 강령으로 세계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는 거대한 노력의 일부가 돼야 한다.
노동자계급과의 단결과 함께, 기후운동은 전 세계에서 토지와 수자원을 수호하려는 원주민들에게 무조건적인 연대를 표방해야 한다. 이 투쟁들은 지구를 지키는 최전선인데, 이곳에서 자주 원주민들은 국가폭력과 다국적 기업의 진출에 맞서 대결할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추정치는 원주민들이 세계 생물다양성의 80%를 보호한다고 지적한다. 그렇긴 해도 원주민들의 투쟁을 포함하여 민중의 가장 전투적인 운동 속에도 자본과 타협하려는 그릇된 지도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청년운동의 가장 진보적 요소들이 기후운동 전위의 해당 부문을 이끌어 나가도록 우리가 권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원주민들의 가장 진보적 요소가 그런 투쟁에서 승리하는 데 필요한 지도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 사회주의자들과 기후 활동가들은 기후운동에 대한 국제주의적 접근으로써 미 제국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를 강조해야 한다. 이는 도덕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 의무이기도 하다. 미군만큼 지구와 전 세계 노동자 연대에 커다란 위협이 되는 존재도 없다. 미군은 토지와 수자원을 오염시키고,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소비하며, 최전선의 원주민 투쟁을 폭력적으로 탄압해 지구 전체의 환경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미국과 북반구의 다른 부유한 나라들에서 좌파와 노동자계급은 또한 다음의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기후변화가 강제하는 이주 문제는 사회주의자들이 권력 장악 이전과 이후 모두에 대응해야 할 주요 위기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부유한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은 남반구의 기후난민을 방어하기 위해 대중을 조직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틀림없이 이들 기후난민은 극우세력이 노동자계급 내부에 민족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사용할 표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의 지도자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반제국주의 대응의 일환으로써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국방예산 삭감(defunding of the Pentagon)과 국경 개방을 명확히 요구해야만 한다. 물론 위 두 가지 요구는 자본가정당인 민주당 내에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므로, 미국 좌파는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독립성에 기초한 혁명정당 건설 임무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2022년은 기후운동의 가장 선진적 부문이 앞장서서 NGO의 그릇된 지도자들, 개량주의 경향, 지구적 기후위기에 지역적 시도로 대응하는 과거의 한계를 넘어 운동을 밀어붙이는 한 해가 돼야 한다. 기후운동의 지도자들이 계급 독립성, 국제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전망을 향해 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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