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 자회사는 노동조합이 선택해서는 안 될 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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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현대모비스가 통합계열사란 이름의 자회사(현대모비스가 지분 100% 소유)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불법파견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임을 숨기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사기이자 꼼수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이 실상은 자회사 정책이라는 건 잘 알려진 바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자회사 꼼수는 현대위아, 현대제철 등 제조업으로 번져나갔고, 이번 현대모비스의 자회사 설립으로도 이어진 것이다. 아래 기고 글은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조합원 정범채 동지의 글이다. SK브로드밴드는 민간부문 최초로 간접고용 노동자를 자본이 ‘직고용’했다고 포장했던 사업장이다. 정범채 동지의 글은 현대모비스 노동자들이 무엇을 놓쳐서는 안 되는지, 앞으로 어떻게 원청 사용자성 쟁취 투쟁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해준다.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 설치, 수리, 상담 업무를 하던 하청노동자들은 2014년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를 결성했다. 전국 100여 개 업체에 소속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진짜 사장인 SK가 책임져라, 직접고용·정규직화하라, 임금과 복지를 개선하라고 줄기차게 외쳤다. 그해 11월 전면파업에 돌입하여 다음 해 4월까지 집단 노숙농성, SK그룹 본사 점거 투쟁, 고공농성, 오체투지 등 치열한 투쟁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임단협 합의에 이르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직고용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회사가 갑자기 등장하더니 그해 7월 SK브로드밴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로의 소속 전환이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발표한 이후 민간기업 최초의 자회사 전환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노동조합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에서 엄청 벗어나 있었다. 노조 간부들과 정치권, SK브로드밴드 원청 간에 비공개 협상이 수차례 진행되었다. 조합원들은 뒤늦게 언론 보도를 통해 자회사 추진 사실을 알게 됐고, 노조에 항의하여 설명회가 진행됐다.
그러나 노조는 진행 상황 설명 후 “선택권은 조합원들에게 있다”며 자회사에 대해 선택하라고 했다. 수년간 요구해온 원청의 사용자 책임과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를 선택할 것이 노동자에게 강요됐다. 조합원들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자회사를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었다.
자회사 전환 후 노동자들의 처지와 환경은 나아진 게 없는데 노동조합은 많은 변화에 맞닥뜨렸다. SK는 그동안의 단협이나 임금협약을 그대로 승계하는 수평 이동을 한다는 그럴듯한 말로 현혹했다. 그러나 이는 처지와 환경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노동자들은 향상된 처우와 임금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자본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개별 하청사와 투쟁을 통해 확보했던 각종 수당 등이 사라져 임금 삭감이라고 분노한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자회사 홈앤서비스는 노동조합의 요구는 과거 하청 수준으로 철저히 통제했다. 새로운 직군을 신설하여 지원자를 모집했다. 수당을 몇 푼 얹어주면서 자본의 필요에 따라 개처럼 일하는 노동자가 되라고 현혹했다. 노동자들은 똑같이 일하고 똑같은 돈 받고 힘든 건 마찬가진데 SK의 자회사 쇼에 또 한 번 속았음을 느낄 뿐이었다.
노동조합은 자회사 이전보다 훨씬 나쁜 상황에 놓였다. 자회사로 전환되면서 노사협조적인 SK브로드밴드 원청노조의 지원을 받은 기업노조가 생겨나 조합원 숫자만으로는 민주노조와 대등한 수준이 됐다. 교섭창구단일화나 노사협의회 선거, 파업 찬반투표 등 노동조합의 중요 사업에 사사건건 시비를 일삼았다. 노노 갈등으로 포장된 자본과의 또 다른 전선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회사 전환 후 2018년 자회사의 문제를 제기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원청인 SK는 버젓이 대체인력을 투입하여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광분했고 노동청은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이 아니라는 소리를 앵무새처럼 읊어댔다. 직고용한다면서 자회사를 설립했으나 여전히 간접고용인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회사는 사기다. 자회사는 덩치 큰 용역회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싸웠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품었던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자회사에서 더 이상의 직접고용 투쟁, SK가 노동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는 하기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회사 전환 후 노동조합이 투쟁다운 투쟁을 하지 못하고 우리 노동자의 삶이 쳇바퀴처럼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자 조합원들은 현실의 벽을 느끼고 절망하고 체념하고 있다. 이것이 자본이 자회사를 만든 가장 큰 이유다. 노동자들을 절망과 체념으로 길들이고 자본이 주는 작은 이익에 서로 경쟁하고 이것을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더 이상의 열망과 희망을 품지 않도록 하는 것. 더불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것.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것.
아직도 자회사를 노동조합의 선택지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동지가 있다면 꼭 말하고 싶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하면서 자본이 원하는 것과 반대로 가야 노동자들이 산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회사는 자본이 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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