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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0에서 1로: 미국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마침내 무노조 장벽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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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19,070회 2021-12-1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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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상태를 보여주는 숫자 0을 지운다.

 

 

미국에 8,000개 이상의 매장이 있지만 노조가 있는 매장은 단 하나도 없던 스타벅스. 그곳에 마침내 노조가 들어섰다. 숫자 01로 바뀌었다. 대표적인 무노조 사업장의 거대한 장벽에 작은 구멍이 뚫렸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트럭 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스타벅스의 본산지인 미국에서 노조 결성이 시작됐다는 소식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한국과 미국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 스타벅스에서 노조 결성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일부 매체에선 일단 한국의 노조 결성은 논의해야 할 이슈와 쟁점이 미국 현지 사회와 사뭇 다르다며 서둘러 선을 그으려 한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리고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든 똑같은상황이란 없기 때문에 이런 선 긋기는 하나마나한 소리다. 오히려 국적을 넘어 노동자들이 겪는 보편적인 어려움과 감정을 주목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 게 없었다면 미국에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던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트럭 시위를 벌인 한국 스타벅스 노동자들에게 연대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 뉴욕주 버팔로에서 노조 설립을 주도한 스타벅스노동자연합(SBWorkersUnited)’은 매출목표를 계속 높이면서 일할 사람은 채워주지 않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 그에 따른 과도노동, 형편없는 임금 수준, 유급휴가가 부족해 코로나19가 번지는 상황에서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문제를 규탄했다. 바리스타의 평균 연봉이 25,000달러, 3천만 원이 채 안 되는 반면 CEO인 케빈 존슨은 지난해에 14,700,000달러, 173억 원을 자기 몫으로 챙겨갔으니,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느낄 박탈감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코로나 핑계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내일을 기약할 수도 없다는 불안감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다. CNN과 인터뷰한 마야 파노스(관련 기사)는 그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된 경험을 이렇게 떠올렸다.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눈앞에서 내 삶의 조건이 허물어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얼마 후 스타벅스에서 파트타임 일자리를 얻은 마야 파노스는 노조를 만들려 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번에는 뭔가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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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에 성공하고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는 미국 스타벅스 노동자들

 

 

물론 미국의 대표적인 무노조 사업장이 순순히 노동자에게 길을 열어줄 리 없다. 처음으로 노조 설립에 참여하게 된 마야 파노스는 계속 감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동료들에게 이제 나 해고되는 건가?”라고 물어야 했다. 과거에 스타벅스에서 노조를 세우려다 해고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노조 설립 방해 목록

 

스타벅스가 노조 설립을 방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

 

매장에 인원 추가 투입: 노동자들이 요구한 인력 충원이 아니다.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매장에만 새로 인원을 대거 투입해서, 노조 설립 찬반투표에서 찬성표의 비율을 확 끌어내리려는 술책이다. 버팔로 매장에서 오래 근무한 알렉시스 리조(Alexis Rizzo)일하러 갔는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 열 명이 에워싸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위협적인 일이다라며 사측의 계략을 폭로했다.

 

회사 임원들이 수시로 버팔로의 매장들을 찾아가서 모임을 소집하고 협박과 회유를 했다. “노조 설립에 반대표를 행사했으면 좋겠다.” “노조에 투표하면 복지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 이런 말들과 함께.

 

매장을 방문해 노동자들에게 일장 연설을 한 전 CEO 하워드 슐츠(관련 기사)는 느닷없이 홀로코스트 시기에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이 담요 한 장을 대여섯 명이 같이 덮고 잤다는 얘기를 꺼내며, 전형적인 고통분담 논리를 꺼내 들었다. 노동자들은 그 얘기에 오히려 더 열받았다.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노동자들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본사에서 수많은 매니저를 보냈다. 투표에 참여하는 노동자 숫자보다 감시자로 파견된 매니저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고 한다.

 

노조 설립에 동참하려는 매장 중 한 곳을 갑자기 직원 훈련소로 바꾸고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다른 매장으로 보내버리기도 했다.

 

이번에 노조 설립을 무산시키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사측은 투표에 참여한 세 개 매장의 전체 투표수를 합계해 찬반 여부를 가려야 한다고 억지를 부렸다.(매장별로 노조 설립이 가능하다.)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세 개 매장 중 한 곳에서 투표 참가자 27명 중 19명 찬성으로 상급 단체인 서비스노조(SEIU) 가입이 결정됐다. 스타벅스 노조 설립 소식을 알리는 <레프트보이스> 기사는 한 곳 꺾었고, 이제 8,952개 남았다”(One Down, 8,952 Starbucks to Go)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번 노조 설립 시도의 의미와 과제를 잘 요약해 보여준다. 22만여 명의 노동자가 고용돼 일하고 8,000개 이상의 매장이 있는 미국 스타벅스. 그중 단 한 개의 매장에서 노조가 만들어졌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건 누구에게나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무노조 족쇄에 묶여 옴짝달싹 못 하던 지금까지의 상황과, 단 한 걸음일지라도 그 족쇄를 깨고 발을 내딛은 상황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코로나를 핑계로 노동자에게 피해와 고통을 전가하는 상황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삶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그 방향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사례는 쉽게 전염성을 갖는다. 버팔로의 한 매장에서 노조가 만들어지자 이 지역의 또 다른 세 개의 매장과 애리조나주의 한 매장에서도 노조 설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애초에 이번 노조 설립 성공도 지난 몇 달간 미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숱한 파업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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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설립에 앞장 선 미국의 젊은 스타벅스 노동자들

 

 

노조 설립에 나서는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상당히 젊은 층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앞서 인용한 마야 파노스는 17세이고, 다른 조합원들도 20~30대 젊은이들이다. 스타벅스 노조 설립을 다룬 미국 매체들은 갤럽 여론조사 결과 18세에서 34세 사이의 노조 지지율이 77%, 다른 어떤 세대보다 높게 나왔다고 전한다. “자신들이 부모 세대보다 힘들어질 것이란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노조 지지율이 곧장 조직률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짚더라도,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대중 저변에서 어떤 정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놓쳐선 안 된다.

 

다시 한국으로

 

올해 10월 한국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트럭 시위를 벌였을 때 그들은 트럭에 스타벅스 파트너는 일회용 소모품이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붙였다. 자신을 파트너라고 부르는 게 이질감이 들 수는 있지만, ‘우리는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다라는 외침은 노동자가 단결해 투쟁에 나서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아주 보편적인 구호다.

 

민주노총이 스타벅스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지원하겠다며 손을 내밀었을 때 이들은 자신의 의도를 변질시키지 말라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런 장면이 씁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스타벅스 파트너들을 공정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개인주의적 젊은이들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접근할 일이 아니다. 조직을 갖고 있지 못하고, 투쟁 속에서 노동자의 관점을 키워나갈 기회를 갖지도 못했던 이들이 여전히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영향받은 채 행동을 시작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다. 처음으로 민주노총에 가입하고 파업을 시작한 노동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내가 이렇게 투쟁에 나서게 될 줄 몰랐다”, “노조의 자만 들어도 고개를 돌렸다고 고백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총이 어떤 모습을 보여왔는지, 그리고 보여줄 것인지가 핵심이다. 속도와 계기는 다를 수 있지만 한국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자본과 정부의 고통 전가 정책에 맞선 반발이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다. 자기 조합원들의 이익만 챙기려 하거나, 정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무기력한 조합주의, 관료주의와 단절하는 것! 그것이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투쟁 물결을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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