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투쟁 | 영원히 빛나는 투쟁의 별 바라보며 2라운드 위해 힘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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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와 억압이 강했던 만큼, 그에 맞선 투쟁 역시 뜨겁고 강렬했다. 가장 어려운 처지의 여성 노동자들은 거침없이 투쟁했다. 이들은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노동자의 고통스런 현실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싸웠다.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사기행각에 브레이크를 걸며 가짜 정규직화 정책을 낱낱이 폭로했다. 정부는 김천 본사 농성장에 공권력을 투입하려 했지만 노동자들의 기세에 놀라 포기했다.
노동자들의 대담하고 헌신적인 투쟁 덕분에 최근에 보기 힘든 폭넓은 연대와 사회적 지지가 모아졌다. 줄기찬 투쟁으로 계속 불법파견 승소를 끌어냈고, 도로공사도 직접고용 대상자를 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위대했던 투쟁의 1라운드가 마무리되고 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오늘 김천 본사 농성과 민주당 의원실 농성을 정리했고, 조합원 총회를 열어 복귀 후 현장투쟁을 결의할 계획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불굴의 투혼
처음 투쟁에 나선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이렇게 싸울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불굴의 용기와 투혼을 보여줬다. 단결한 노동자의 힘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착취와 억압에 신음하는 다른 수많은 노동자의 투쟁도 톨게이트 투쟁처럼 강할 수 있다. 아니 강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터져 나오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런 강력한 노동자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해내겠는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돌파하지 못한 벽도 있다. 대단히 아쉽고 안타까운 마무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17일 도로공사는 1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2015년 이후 입사자도 직접고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법원 판결에서 자신들이 승소하면 직접고용 효력을 해제한다는 단서조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끝까지 노동자를 갈라 치려는 비열한 꼼수인데, 이걸 삭제하고 조건 없는 직접고용을 쟁취하지는 못했다. 손해배상, 고소고발 문제도 풀지 못했다. 임금 및 직무에 대한 추후 협의조차 도로공사는 거부했다. 결국 그 어떤 합의서도 작성하지 못하고 복귀하게 됐다.
최선을 다해 투쟁했지만
7개월 동안의 쉼 없는 투쟁으로 수많은 고통이 쌓였고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어려움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투쟁 전망과 연대투쟁의 힘은 마련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9월 23일 김천에서 대의원대회를 열고 공권력 투입 시 총파업을 결의했지만, 이미 그 땐 정부가 ‘진압’에서 ‘고립·포위’로 작전을 바꾼 뒤였다.
그런데 저들의 포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민주노총 차원의 연대투쟁은 제대로 기획조차 되지 않았다. 민주노총 지도부에게서 톨게이트 투쟁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온 자회사 저지투쟁을 하나로 묶어 투쟁전선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와 지도력을 찾아볼 순 없었다. 아래로부터 톨게이트 투쟁을 지지·엄호하면서 전체 노동자의 투쟁을 발전시키려는 전투적 투사들의 힘도 대단히 부족했다.
굴곡도 있었다
노동자들은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전체 직접고용이라는 대의를 포기하지 않았다. 작년 10월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2심 계류 중인 수납원은 직접고용하되, 1심 계류 중인 노동자는 1심 판결 결과에 따른다. 1심 판결 결과까지는 임시직으로 일한다”는 쓰레기 중재안을 들이밀어 한국노총 톨게이트노조를 정리시켰는데,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톨게이트노조 일부 조합원들도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에 가입해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
그런데 투쟁 지도부는 을지로위원회가 다시 중재자로 나서는 걸 적극 반대한 게 아니라 허용했고, 한 때 ‘2015년 이후 입사자는 이후 최초 법원 판결에 따른다’는 수정안을 조합원들에게 제시해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12월 이후 교섭에 매달리면서 투쟁시기를 놓치고 투쟁력이 더 떨어지기도 했다.
역사의 한 페이지
그럼에도 톨게이트 투쟁의 빛나는 의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투쟁을 다 하려 했다. 관성적이고 형식적인 투쟁이 아니었다. 작년 6월 30일 수십 명의 노동자들은 서울요금소 캐노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무더위, 장마, 태풍, 외로움, 경찰과 도로공사의 농성 방해를 이겨내며 백일 가까이 버텼다. 캐노피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캐노피 점거와 함께 청와대 앞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많은 연행자와 부상자가 발생했지만 계속 투쟁을 펼쳐 나갔다. 경찰의 청와대 저지선을 뚫는 대담한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들의 심장인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점거했다. 혼신을 다해 한패인 구사대·경찰과 싸웠다. 윗옷을 벗어가면서까지 처절하게 싸워 점거농성을 사수했다. 노동자들의 과감함, 결단력, 전투의지는 한국 노동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 맞서
김천 본사 농성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노동자들은 서울에서의 투쟁도 결의했다. 결국 승리의 열쇠는 정부와의 싸움에 달려 있었다. 이강래를 넘어 민주당과 정부를 압박할 필요가 있었다. 11월 7일 김현미, 이해찬 사무실을 점거했다. 광화문에 농성장을 차렸다. 노동자들은 계속 청와대 면담투쟁을 진행했다. 거의 매일 철벽을 뚫는 심정으로 경찰 벽을 뚫기 위해 싸웠다.
이후에도 민주당 국회의원 점거 사무실을 20곳 이상으로 늘려가며 계속 민주당과 정부를 압박했다. 노동자들은 줄기차게 연대투쟁을 다녔다.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도 마사회의 비리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죽음으로 항거한 문중원 열사투쟁에도 열심히 연대했다.
당당한 노동자로
당장 손에 잡히는 결과보다 훨씬 소중한 가치가 있다. 조합원들은 노예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아내로, 주부로, 이중삼중의 굴레에 갇혀 있다 당당한 노동자로 거듭났다. 자존감을 되찾았고 투쟁하는 노동자로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직접고용을 외치는 순간 수납원 생활하는 동안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찾았다. 비굴했던 지난날의 백흥기는 죽었다.”(2019년 6월 30일 서울톨게이트 문화제에서 조합원 발언)
민주노조의 힘도 커졌다. 숫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투쟁과 연대를 경험하면서 진정 민주노조다운 민주노조를 고민하게 됐다. 자주성, 민주성, 계급성이 살아 있어야 민주노조다운 민주노조라고. 나만의 이익을 넘어 전체 노동자, 특히 가난하고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투쟁의 길을 열어준 톨게이트 노동자들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에 질질 끌려 다니며 기만당하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싸워 전진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의 손을 빌리고 협력해야만 노동자가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아니다. 톨게이트 투쟁을 보라. 문재인 정부는 1,500명을 해고한 도로공사와 이강래를 끝까지 비호했다. 덩치 큰 용역업체일 뿐인 자회사를 밀어붙이고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자본가들의 정부다. 경찰은 도로공사의 사병 역할을 했고 청와대 앞에선 한 달에 네 번이나 노동자들을 연행했다.
노동자의 삶을 실제로 바꾸려면 이 정부, 나아가 이 가진 자들의 체제와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 민주당과 정부에 대한 정치적 독립성은 필수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바로 이 정부에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자회사 꺼져!”라고 외치는 단호한 투쟁과 연대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투쟁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아쉬움 속에 톨게이트 투쟁의 1라운드는 마무리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기만적인 자회사 정규직화에 맞선 투쟁, 온전한 비정규직 철폐를 향한 투쟁의 2라운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2라운드는 톨게이트 동지들만의 투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투쟁으로 시작해야 한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도달한 곳에서 새롭게 길을 열어가야 한다. 그 길의 출발점을 만들어준 톨게이트 동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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