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 “송전탑 위에서는 동료밖에 없어요. 동료를 믿어야죠.” -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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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시작
주인공 박정은 대리는 7년간 근무했던 회사에서 송전탑 관리보수 하청업체로 1년간 홀로 부당인사발령을 받는다. 그러나 하청 현장에 그의 자리는 없다. 누구 한 명 반기는 사람도 없다. 어떤 일을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원청에서는 박 대리가 스스로 포기하고 나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1년간 버티기 위해 스스로 배우며 현장에서 살아 남으려 한다.
영화 속 현장에는 기본적으로 애자(전선로나 전기기기의 나선(裸線) 부분을 절연하고 동시에 기계적으로 유지 또는 지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절연체)를 메고 송전탑을 올라야 하는 작업이 있다. 이런 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주인공에게 무거운 자재를 메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현장의 작업복은 손대기도 꺼려지는 낡은 것뿐이었다. 주인공은 이런 작업복밖에 없느냐고 물었지만, 제대로 권리를 누려본 적이 없는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에서 온 주인공의 푸념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게 어때서요? 공짜가 어딘데”라며 어이가 없었을 뿐이다.
공동의 적
그러나 냉랭하던 그들 사이에도 조금씩 변화가 오는 순간이 닥친다. 업무평가를 하겠다며 원청 관리자가 현장에 파견된다. 관리자는 주인공 앞에서 ‘효율’을 이야기하며 정리해고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모욕을 준다. 현장평가에서 일부러 주인공에게 낮은 점수를 매겨 내쫓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비아냥, 성희롱, 인격모독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이건 주인공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점수가 낮으면 쫓겨나가야 하는 건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원청 관리자의 압박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알게 모르게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같이 밥도 안 먹을 정도로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지만, 이제는 함께 백숙을 끓여 먹으며 그 벽이 허물어져갔다.
영화에서는 가시적으로 눈앞에 공동의 적이 등장해 그 전까지 불편함을 느끼고 배척했던 관계가 녹아내리는 과정, 원하청 노동자가 해고 앞에서 ‘해고는 살인’이라는 공통의 처지에 있음을 느끼는 과정이 우회적으로 표현된다. 전혀 관계가 없어보였던 원청에서 쫒겨난 주인공과 기본 작업복도 지급이 안 되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 관리자에 맞서면서 사실은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은 중요하다.
‘누군가’
당장에 아무리 노동자들이 원청과 하청, 현장과 사무, 여성과 남성, 나이 등을 이유로 분열되고 서로 질시하고 배척해도, 영화에서처럼 ‘원청 관리자’라는 하나의 전선이 등장하면 사실 노동자들이 누구의 편인지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물론 영화에서도 단순히 원청 관리자가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 사이의 벽이 자동으로 무너져 간 것은 아니다. 초보적인 단계였을지라도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고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누가 누구의 편인지를 드러내는 과정이 있었다.
현실에서는 자본에 맞서서 공동의 전선조차 만들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 답답한 분위기가 영화 속 답답한 상황과 꼭 닮았다. 그러나 영화에서 우회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도 바뀔 수밖에 없는 틈이 있기 마련이다. 각자도생의 늪에 빠진 노동자들 각자가 사실 누구의 편인 것인지, 그렇게 전선을 분명하게 만들어내는 게 중요할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듯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그 ‘누군가’의 역할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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