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외주화의 최고봉, 일자리 삼키는 팹리스 – KEC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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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업체에서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KEC
구미공단 1호 기업 KEC는 1969년 나라에서 불하받은 땅 20만 평에 공장을 지었다. KEC 구미공장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KEC그룹의 살아 있는 역사이자 생산의 중심이었다. 반도체 사업을 중심으로 TV, 전자기기, 전자악기, 세라믹, 전장, LCD를 만들었다. 내가 입사한 1999년에는 SSTR(소(小)신호 트랜지스터) 부문 전 세계 1위였다. 자체 기술개발 연구소도 있었고, 기술과 품질을 갖춘 훌륭한 중견기업으로 알려졌다.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도 추천되던 회사였다. 노동자 수는 1,800여 명이었다.
사라지고 없어진 사업부들
잘 나가던 회사는 2000년 들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2002년 TV, 악기, 전자기기 모듈사업부가 없어졌다. 2004년 세라믹, LCD 부서가 없어졌다. 자체 기술 개발하던 연구소도 사라졌다.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2009년에 영업부가 분사됐다. KEC에 있던 영업부는 모두 지주회사 한국전자홀딩스의 별도법인이 됐다.
2013년엔 주요 설비인 어셈블리를 빼서 태국공장으로 가져갔다. 공장 합리화란 이유로 통폐합이 진행됐다. 현재 KEC 구미공장은 소신호 제품인 SSTR, IC, 다이오드 등을 생산하고 있다. 노동자는 63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2020년 글로벌 전력반도체 기업 선포!
KEC는 지난 8월 테슬라에 터치스크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며 글로벌 전력반도체 전문기업으로 포부를 밝혔다. 테슬라 제품은 내년 초 공급을 시작한다. 이 사실이 발표되자 KEC 주가는 연일 급등했다. 11월 2일에는 국내 최초로 부트스트랩 다이오드가 내장된 게이트 드라이버 IC와 IGBT 솔루션 출시를 발표했다.
그동안 국내 주요 가전 기업들은 게이트 드라이버 IC 탑재 적용 시, 외국산 반도체에 의존해 왔다. KEC가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 제품들은 소신호 제품인 SSTR, 다이오드(Diode)보다 평균단가가 20~30배 높다. KEC 사업본부 박남규 부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50년간 KEC는 SSTR, 다이오드(Diode)를 주력 비즈니스로 국내외 굴지 기업과 신뢰를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대전력용 Discrete 제품군인 SJ MOS, LV MOS와 IGBT 외에 Gate Driver IC와 Power IC 및 SiC, GaN을 이용한 고부가가치 신제품들을 대거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 가전시장에 적용되는 SJ MOS 제품군은 빠르면 올해 10월 말부터 첫 출하가 예상된다. IGBT는 소신호 제품 대비 100배 이상 단가가 높은 제품들이 이미 자동차 제조 기업들로부터 양산검증을 받고 있다. 매출뿐 아니라 이익증대와 사업구조 개선에 상당한 효과를 발생시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출시한 제품의 수요가 당초 예상보다 높아 설비투자와 품질관리도 병행으로 시행하여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노후화된 구미공장, 전력반도체는 외주생산
그런데 구미공장에선 박남규 부사장이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자랑한 전력반도체 제품도, 테슬라 제품도 생산하지 않는다. 구미공장 노동자들이 만들지 않는 제품이 출시되고 양산되는 것이다. 생산처는 외주업체다.
KEC는 2019년 창립 50주년 비전 선포식에서 구미공장은 팹 공장(반도체 생산공장)으로, 태국공장은 어셈블리 메인 생산기지로, 중국공장은 마케팅 기술제휴, 전략소싱 거점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구미공장은 팹 공장으로’란 계획이 팹 생산을 확대한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KEC 구미공장이 전력반도체를 주력 제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회사는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아무런 설비투자를 하지 않았다. 반도체 기업들이 8인치 기판을 생산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마당에 KEC는 5인치 기판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노후화된 설비로는 전력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
구미공장 전장은 축소
현재 구미공장에는 전장(전기전자장비) 공정이 있다. 현재 물량 축소와 전환배치가 진행 중이다. 글로벌 전력반도체 기업이 되겠다는 회사는 구미공장 전장은 외주화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구미공장은 전장부서 축소 중이다. 삼성, SK, LG가 전장사업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과 아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유는 전력반도체 생산을 사내에서 하지 않을 셈이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팹리스’가 구미공장의 머지않은 미래다.
팹리스 막고 생존을 지키는 투쟁!
팹리스(Fabless)란 반도체 설계기술은 있으나 생산라인(공장)이 없는 기업을 말한다. 생산라인이 없다면 노동자도 없다. KEC 자본의 의도는 전력반도체 신제품은 모두 외주생산으로 빼돌리고 구미공장은 비우겠다는 것이다.
KEC는 2000년 초 수많은 사업들을 정리하면서 반도체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노조는 회사의 약속을 믿고 2004년 임단협에서 임금을 동결하고 2,000억 신규투자를 합의했다. 그러나 약속된 2,000억은 절반도 투자되지 않았고, 오히려 어셈블리 공장을 태국으로 가져갔다. 그동안 낡은 설비를 숙련된 노동자의 힘으로 가동해왔다. 구미공장은 노후화된 설비로 시장성 없는 제품만 만들고 있다.
전력반도체 전문기업으로 단가 높은 제품을 외주생산하면 KEC는 떼돈을 번다. 그러나 노동자는 모두 일자리를 잃는다. 노동자는 죽이고 회사만 살겠다는 팹리스, 절대 안 된다. 금속노조 KEC지회는 일자리 삼키는 팹리스를 저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싸운다. 반드시 구미공장의 미래와 생존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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