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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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노동해방투쟁연대(준)와 사회변혁노동자당 공동주최로 “노동자투쟁과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운동”이란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변혁당은 이후 노동당과도 함께 ‘사회주의 정당’에 관한 토론회를 예정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자본주의의 치명적 한계가 드러나면서 급진적 대안과 사회주의 정당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사회주의 정당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 지난 토론회에서는 노해투를 대표해 최영익 동지가 이 물음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당시 발제문에 담았던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운동의 방향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공개해달라는 일부 참가자들의 요청이 있었는데, 이 글은 그런 요청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란 무엇인가,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당은 어떤 역사적 궤적을 거쳐왔는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에서 강령은 어떤 실천적 의미를 갖는가, 왜 노동자 투사들이 당 건설의 주역으로 앞장서야 하는가 등 여러 주제를 포함한다.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각 주제별로 나눠 연재하고자 한다.
코로나19 사태에 이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위기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자신의 위기를 완화하고자 더욱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지속될 자본주의 경제위기 속에서 격렬한 계급투쟁의 무대가 점차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맞선 근본 대안을 추구하는 혁명적 노동자운동의 시대를 예고한다.
그와 나란히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은 그 운동의 산물이자, 동시에 그 운동의 가장 선진적인 추동력으로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이 시대에 사회주의 운동은 노동자투쟁을 통해, 그리고 이 투쟁을 이끄는 가장 선진적인 활동가들과 함께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운동을 본격화해야 한다. 이 전망만이 오늘날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불러오는 끔직한 고통과 모순을 새로운 혁명적 세상을 여는 원동력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 앞에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근본 노선을 점검하고, 이것에 입각한 당 건설운동 전망을 모색하는 것은 모든 진지한 사회주의 투사들의 긴급한 임무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정체성
사회주의를 내걸지만, 자본주의에 맞서 사회주의의 힘을 실질적으로 부단히 확장시켜내는 데 전력을 투구하지 않는 당은 진정한 사회주의정당이라 할 수 없다. 이런 당은 사회주의라는 포장지를 걸치고 있을 뿐, 사실은 자본주의 경제, 정치구조에 순응할 뿐이다. 이 당들에게 사회주의란 자본주의 하에서의 사소한 개량 획득, 소위 사회복지 정책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혁명적 구조를 형성해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철폐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의 절실한 권리를 실현하려는 전망은 자본주의 경제구조에 순응하는 것이다. 의회나 행정부를 비롯해, 노동자 민중의 통제에서 벗어나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는 데 최적화된 자본주의 정치구조에 순응하면서 노동자해방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거로 자본주의 정치구조의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을 사회주의 실현의 전망으로 제시하는 선거주의 정당들이 바로 그런 전략을 추구한다. 이런 사회주의는 낭만적 이념에 불과할 뿐,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혁명적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반면 진실로 혁명적인 사회주의정당은 사회주의 사회의 원형을 노동자투쟁을 매개해 노동자조직들 속에서 구현하는 당,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수 있는 사회주의의 힘을 현실에서 형성해가는 당이다. 이렇게 혁명의 힘을 부단히 창조해가는 진지한 전략에 기초하지 않은 한, 이 당들이 말하는 사회주의란 하나의 추상적 이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런 당들은 사회주의라는 추상적 구호 뒤에서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사소한 개량이나 복지개선 정도를 추구하는 선거주의 정당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세계 노동자운동은 뼈저리게 입증해왔다.
이런 개량주의, 의회주의 당들과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은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주의의 힘을 부단히 발전시켜 나가는 당이 바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본령이다. 자본주의 경제, 정치 구조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노동자권력이라는 새로운 경제, 정치구조를 통해 그것을 극복, 대체하는 혁명적 전략을 구체적 실천을 통해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당이 바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다.
자본주의 경제, 정치구조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자본주의에 맞서는 사회주의의 힘을 부단히 축적해가고, 그 힘이 결정적 단계에 도달했을 때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는 결정적 도약에 주저 없이 나설 수 있게 준비된 당만이 비로소 진실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라 할 수 있다. 이 당은 의회주의, 선거주의 당과는 기본전략에서부터 확연히 구별된다. 이 당은 단순히 선거에서 득표수나 당원의 숫자가 아니라, 이러한 혁명적 사회주의의 힘을 실질적으로 얼마나 발전시켰느냐에 따라 자신의 활동을 측정한다.
이 당은 자본주의 경제, 정치구조 ‘안’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이 당은 자본주의 경제, 정치구조 ‘바깥’에서 사회주의를 준비하는 노동자계급의 힘을 확대하는 것만이 노동자계급 해방전략임을 명확히 하면서, 선거와 같은 자본주의 정치구조 ‘안’에서의 활동을 그것에 종속시킨다.
정리하면, 진실로 혁명적인 사회주의 정당인지를 가늠하는 가장 근본적인 측정기는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의 힘을 성장시키는 것”에 자기 활동의 중심을 두고 있느냐이다. 이러한 ‘새로운 것’에 대한 확고한 전망 없이, 그리고 이 ‘새로운 것’을 자본주의의 낡은 구조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부단히 성장시키고자 하는 혁명전략 없이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하겠다고 하는 모든 세력은 사실은 개량주의의 낡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뿐이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전략을 수립하는 데서 가장 일차적인 고려사항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사실 사회주의란 개념은 너무나 널리 사용되는 만큼, 그 의미의 진폭은 대단히 넓다. 심지어는 조국처럼 자본주의 체제를 관장했던 핵심인물조차 자신을 사회주의자라 칭한다. 이들에게 사회주의란 자본주의 신념을 거창하게 포장하는 치부가리개에 불과하다.
또 하나의 극단에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북한, 중국, 192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 같은 사회체제를 모종의 사회주의 체제로 간주한다. 그 연장선에서 이들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도 사회주의 정책을 실험한 정권으로 접근했다. 이들에게 사회주의란 ‘국유화 체제’와 동의어다.
그런 생각과는 달리, 사회주의의 진정한 요체는 바로 ‘노동자계급 해방사회’라는 점에 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이 경제와 정치를 통합하며 사회를 운영하는 실질적 주인공이 되는 사회체제를 뜻한다. 그 결정적 조건은 모든 노동자대중의 힘을 모아 사회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노동자권력의 수립이고, 이 노동자권력 수중에 모든 경제적 생산수단을 집중해 사회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권력의 존재 여부를 도외시한 채, 단순히 국유화 여부를 사회주의 사회인지를 판별하는 결정적 조건으로 삼는 것은 사회주의의 진정한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심지어 노동자계급 위에 군림하며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관료집단의 지배체제를 모종의 사회주의로 혼동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는 노동자계급 해방사상으로서 사회주의, 모든 억압과 착취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사상으로서 사회주의의 권위와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해방사회로서 사회주의는 생산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노동자조직의 공동체적 그물망을 통해 구현된다. 이 공동체적 그물망은 계획적, 민주적, 자주적 관리를 통해 작동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해방을 실현하는 결정적 토대가 된다. 동시에 이처럼 생산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힘에 토대를 두고 작동하는 공동체적 생산그물망은 ‘노동자권력’이라는 정치적 지배의 그물망이기도 하다.
생산현장의 집단적 노동자조직들에 토대를 둔 노동자 평의회 유형의 정치체제는 입법, 사법, 행정을 하나로 통합해 관장하며, 모든 정부 관리를 직접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하고 언제든지 소환할 권리를 행사한다. 군대와 경찰도 노동자계급의 자주적 조직들에 의해 운영되며, 자본가계급의 반항을 완전히 극복함에 따라 이러한 억압과 지배기구로서의 군대, 경찰제도는 소멸한다. 이런 식으로 사회주의는 경제와 정치를 하나로 통합해, 노동자계급이 사회를 진정으로 통제, 운영하도록 보장한다.
이러한 노동자계급 해방사회는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상상 속에서 고안한 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파리코뮌에서 시작해 러시아 소비에트, 독일 레테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운동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노동자들이 피어린 투쟁을 통해 세상에 드러낸 노동자 해방사회의 모습이었다. 사회주의는 바로 이런 역사적 실천을 반영해 노동자계급 해방사회라는 추상적 지향성을 구체화했고, 핵심노선으로 정립해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자계급 해방사회는 오직 노동자계급 자신의 운동을 통해서만 창조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어떤 대통령이나 수상, 어떤 강력한 당에 의해서 노동자대중에게 선사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계급 자신의 투쟁과 실천,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되는 노동자조직과 연대망을 통해서만, 한마디로 노동자계급 자신의 자주적, 주체적 운동을 통해서만 노동자계급 해방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힘과 권위, 자격을 노동자계급은 쟁취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서만 수립될 수 있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은 이러한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운동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은 그 운동과 하나로 융합하며, 그 운동을 맨 앞에서 이끌고 그 운동의 자주적 경험을 통해 나아갈 바를 정확히 밝혀냄으로써 그러한 운동의 전진과 승리를 촉진할 뿐이며, 그 속에서 사회주의 정당의 전진을 함께 꾀한다.
사회주의의 힘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힘은 노동자계급 속에 내재해 있다. 바로 스스로 사회의 주인으로 떨쳐 일어나 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핵심구조를 민주적 집단주의를 바탕으로 운영하는 노동자계급의 힘이다. 이 힘은 착취자들의 모든 반항을 제압하고 사회주의를 밀고 나갈 수 있는 담보물이기도 하다.
이 힘은 착취와 억압을 철폐하고 스스로 이 사회를 공동체주의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노동자계급의 결의, 확신과 함께 그것을 실현할 능력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자라나는, 공동체주의 원리에 따라 민주적으로 작동하는 노동자계급의 조직에 의해 물질적으로 구현된다. 자본가계급과 자본가정부가 가하는 온갖 착취와 억압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공동 이해를 내걸고 단호하게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조직들을 통해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단련한다.
노동자 대중조직들을 사회주의적 지향성으로 무장시키고, 그 내부를 진실로 민주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요소들로 채워냄으로써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 사회를 대체하는 미래 사회주의 사회의 원형을 구현한다. 이 속에서 작업장과 사회를 운영, 통제하고 노동자권력을 수립할 혁명적 능력이 자라나온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계급투쟁을 통해 이러한 노동자조직들이 연대의 망을 따라 전 사회적 성격을 획득하고 한 몸으로 움직일 때,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사회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비로소 건설된다.
단사와 산업, 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전체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란 관점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투쟁을 통해 노동자조직들은 공동체주의 원리를 물질적으로 구현하고, 스스로를 공동체주의적으로 재탄생시킨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적으로 계획되고 운영될 뿐만 아니라, 공동체주의 원리를 따라 분배되는 사회주의를 운영할 단단한 능력을 키워가는 필수적 과정이다. 모든 노동자조직에서 노동자대중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그들 위에 군림하려는 관료집단에 맞서, 노동자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대중을 조직의 주인공으로 일으켜 세워내는 일련의 내부 투쟁이 필요하다. 이런 투쟁이 곧 노동자권력을 예비하는 힘을 축적하는 역사적 과정이다.
바로 이런 노동자조직들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예비하는 진지들이며, 요새들이다. 이 요새들이 강력해지고 연대망을 따라 전 세계적으로 연결돼 가며, 진실로 공동체주의적인 정신과 기풍 아래 단련됐을 때, 그리고 이 토대 위에서 착취자들의 온갖 반항을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전투력을 확보했을 때 사회주의는 노동자혁명으로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점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단순히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좁혀 접근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 속에서 자라나는 사회주의의 맹아, 즉 공동체주의적으로 단련되고 노동자 민주주의로 조직되는 노동자계급의 대중적 연대망이 성장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대체해나가는 일련의 역사적 과정으로 확장해 접근해야 한다. 이 창조의 과정은 외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 정치구조에 타격을 가하며 약화시키고, 내적으로는 노동자계급 내부에 침투해있는 자본주의적 요소를 뱉어내는 파괴의 과정과 맞물려 진행되는 변증법적 과정이다. 이런 창조와 파괴가 일정한 단계에 도달했을 때 노동자권력 수립과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질적 변화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이런 접근법은 노동자 평의회의 의미, 그리고 노동자 평의회 전략과 연결된 사회주의 당의 의미를 선명하게 밝혀준다. 노동자대중의 직접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혁명적 지향으로 무장할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노동자대중을 하나의 단결된 조직으로 융합하는 것이 노동자 평의회다. 노동자 평의회는 작업장 단위의 자주관리에 토대를 두고, 이것을 생산의 사회적 연결망을 따라 노동자 산업통제, 나아가서 사회주의 경제 조직화로까지 확장하는 조직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 평의회는 이러한 경제적 조치들과 나란히, 노동자권력을 수립하는 정치적 행위로까지 나아감으로써 경제와 정치를 하나로 통합시킨다.
물론 노동자 평의회는 일련의 발전단계를 거친다. 하지만 아무리 낮은 단계에서도 노동자 평의회의 본질적 특성은 분명하다. 혁명적 지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모든 부문을 하나로 단결시키면서 대중적 민주주의 기구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이 확장된 형식을 취하든, 그와 별개의 새로운 형식을 취하든, 이러한 노동자 평의회의 등장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 즉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혁명적이고 계급적이며 민주적인 노동자대중 조직을 통해 현실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웅변한다. 명실상부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정당이 대중적으로 탄생하는 것도 바로 이 노동자 평의회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랬기에 그람시는 이탈리아에서 혁명적 노동자당(공산당) 건설이 관념적 계획이 아니라 현실 자체의 발전을 반영하는 필연적 요구라는 점을 노동자 평의회 운동의 등장 속에서 제시했던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볼셰비키 당이 대중적 사회주의 당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하고, 결국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할 수 있는 결정적 지위에 이르게 된 것은 소비에트 같은 러시아판 노동자 평의회의 등장과 뗄 수 없이 연결돼 있었다.
물론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 노동자 평의회 운동이 본격화한 결과물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은 혁명적이고 민주적이며 계급적인 노동자운동을 이끌고 선도함으로써, 또한 그 과정을 통해 노동자조직들을 사회주의의 맹아로 부단히 단련시키는 목적의식적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노동자 평의회 운동의 등장을 능동적으로 촉진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맥락에서 볼 때 사회주의 혁명을 이끌 수 있는 결정적인 단계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이 전진하는 것은 노동자 평의회 같은 대중적 운동의 전진을 필수조건으로 한다.
사회주의 당과 노동자 평의회 운동은 이처럼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몸체로 변증법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을 건설하고, 명실상부한 노동자계급의 혁명당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노동자 평의회의 밑바탕을 이루고 그것의 탄생을 준비하는 혁명적, 민주적, 계급적 노동운동을 전진시키는 일련의 과정과 결코 분리해 접근할 수 없다.
사회주의의 엔진, 계급투쟁
다음으로 사회주의의 요소들을 노동자조직 속에서 부단히 창출해나가는 과정은 계급투쟁과 분리해 접근할 수 없다. 사회주의의 요새인 노동자조직들은 진공 상태에서 운동하지 않는다. 노동자조직들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에 맞선 부단한 계급투쟁 속에서 작동한다. 이 계급투쟁의 과정과 긴밀히 연결돼야만 노동자조직들은 혁명적 지향과 공동체주의 원리를 따라 성장하고, 하나의 강력한 노동자 연대망 속에 통합될 수 있다. 나아가서 이러한 계급투쟁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단련돼야만, 자본과 정부의 온갖 억압에 맞서 사회주의를 실현할 투쟁 능력을 획득해나갈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과 맞서고 있는 자본가계급에 대항한 단호한 투쟁 속에서만 자기 내부에 스며든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자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계급에게 계급투쟁은 외부의 적과 맞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부의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추방하면서 사회주의의 주체로 단련되고 진정한 노동자계급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더욱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계급투쟁의 과정은 즉자적 노동자계급이 대자적 노동자계급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이고도 필수적인 역사적 과정이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기동전과 진지전이 교차하면서 사회주의의 요새로 노동자조직들을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이다. 가장 넓혀본다면, 일련의 계급전투와 연동해 전진하는 노동자조직들이 형성하는 사회주의의 진지들은 결정적 단계에 도달하면 기동전을 통해 노동자권력과 사회주의를 향해 직접적으로 전진하게 된다. 노동자혁명이라는 기동전을 통해 전진한 노동자조직들은 노동자권력이라는 결정적 진지를 획득한다. 이 결정적 진지를 사수하고 강화하면서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를 완전하게 실현하는 더 높은 단계의 운동으로 전진한다. 이렇게 기동전은 재차 더 높은 단계의 진지전으로 이행하고, 또다시 진지전은 더 높은 단계의 새로운 기동전으로 이행한다.
좁혀서 보더라도 원리는 동일하다. 계급투쟁은 기동전과 진지전의 부단한 상호교차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동자조직을 전투적, 민주적, 계급적으로 전진시킴으로써 강화된 노동자 진지는 자본과의 직접적 투쟁을 감행하는 기동전의 시기를 뒷받침한다. 반대로 이런 기동전을 통해 새로운 진지들이 획득될 뿐만 아니라 기존 진지들 또한 더욱 강력한 투쟁 진지로 재구축된다. 즉 계급투쟁의 성공적 전개는 노동자조직을 강화하는 결정적 수단이 되며, 반대로 노동자조직을 단단히 단련시키는 것은 계급투쟁의 성공적 전개를 위한 가장 결정적 수단이 된다. 이처럼 계급투쟁은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의 잠재력을 현실화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다.
결국 계급투쟁을 통해 노동자조직들을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요새로 부단히 단련시켜가는 일련의 과정을 최선두에서 목적의식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혁명적 사회주의 당의 역사적 임무다, 이 당의 건설 과정도 바로 그런 역할을 당당히 떠맡는 과정과 뗄 수 없이 연결돼야 한다. 이런 전망을 갖지 않는 사회주의 당 건설 계획이란 관념적 계획이거나 개량주의적 계획일 뿐,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을 향한 진지한 계획일 수 없다.
결론 짓자.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결정적 힘은 노동자계급과 이 계급의 운동 속에 내재해 있다. 노동자계급이 투쟁을 통해 그 잠재력을 현실화해나가고, 자신의 위력적인 자주적 조직들을 강화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 사회의 요새들을 건설할 수 있게 돕고 이끄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사활적인 역사적 임무이자 그 당을 건설할 수 있는 결정적 수단이다. 그러므로 전투적 민주노조나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생산현장에 기초한 노동자조직의 계급투쟁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이 사회주의자들과 사회주의 조직의 실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선거와 같은 자본주의 정치구조를 십분 활용하되, 결코 그것에 갇히지 않는 투쟁 능력을 노동자계급 한복판에서 창조해야 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적으로 그 투쟁을 이끄는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조직, 그래서 노동자조직 속에서 사회주의의 요새들을 건설해가는 활동가들의 조직이 바로 사회주의 대중정당의 골간이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선거에서 얻는 득표수로 대중적 영향력을 접근하는 선거주의 정당과 구별되는, 자본주의를 완전히 극복하고자 하는 혁명적 사회주의 정당의 근본 정체성을 반영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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